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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Apr 16. 2023

조국과 민족은 무궁한 영광인가

『파친코』리뷰


# 평범하지 않은 시대, 평범한 사람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자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비참하고 굴곡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를 썼다. <파친코>의 매력은 바로 이 평범한 사람들이 살 궁리를 모색하는 가운데 느껴지는 연민과 숭고함에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면 용감한 독립운동가와 비열한 친일파, 잔악한 일제의 대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면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미국이냐 소련이냐에 대한 치열한 이념 논쟁과 진영 싸움이 떠오른다. <파친코>에는 그런 거창한 신념이나 대의명분에 대한 고찰은 없다. 다만 어떻게든 나와 내 가족을 건사시켜야 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있을 뿐이다.


"상관없다." 훈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상관없어." 중국이 항복하든 대갚음하든, 채소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했고 식구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려면 짚신을 삼아야 했고 몇 마리 안 되는 닭을 훔치려고 하는 도둑들을 쫓아야 했다.
가족을 지켜라. 자기 배를 채워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자들을 믿지 마라.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세하도록 해라. 적응해라. 지극히 간단하지 않은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우는 애국자들이나 일본 편에 선 재수 없는 조선 놈들이 있는가 하면, 이곳에서나 또 다른 곳에서 그저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었다. 결국 배고픔 앞에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 선자와 한수


이 소설의 주인공 선자는 열일곱의 나이에 한수를 만나 첫사랑을 시작한다. 한수가 먼저 선자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선자의 생명력과 생활력이 호감의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자의 몸은 말뚝처럼 단단했다. 재주 좋은 손은 힘이 셌고 팔에 근육이 잘 붙었으며 다리는 튼튼했다. 작은 키에 딱 바라진 골격이 탄탄해서 힘든 일도 잘 해냈다. 얼굴과 팔다리가 곱지는 않아도 상당히 매력적인 외모였다.
한수는 선자의 자태가 마음에 들었다. 윤기가 흐르는 땋은 머리, 풀을 먹인 흰 저고리 아래 여며진 풍만한 가슴, 단정하게 맨 긴 옷고름, 빠르고 야무지게 딛는 걸음걸이. 선자의 앳된 손에는 노동의 흔적이 확연했다. 
한수는 멍청한 여자보다 똑똑한 여자를 좋아했고, 드러누울 줄만 아는 게으른 여자보다 열심히 일하는 여자를 좋아했다.


선자는 자신의 하숙집에 머무는 노동자들과 달리 깔끔하고 박식한 한수에게 빠져든다.


선자는 한수의 이야기와 경험에 빠져들었다. 한수의 경험은 먼 곳에서 온 어부들이나 노동자들이 들려준 모험보다 훨씬 특별했다. 
한수에게 비누 향과 머릿기름의 노루발풀 냄새가 났다. 깔끔하게 수염을 깎은 잘생긴 남자였다. 얼룩 하나 없는 한수의 옷이 아주 좋았다. 왜 그런 것이 중요했을까? 하숙집 사내들은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자가 한수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하자, 별안간 한수는 자신이 오사카에 아내와 세 딸이 있는 유부남이라며 선자와 혼인할 수 없다고 밝힌다. 선자는 이제 평생 손가락질 당하고, 어머니의 하숙집에도 피해를 끼치고, 태어날 아이도 아비 없는 자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한수는 자신이 선자와 아이를 경제적으로 충분히 책임질 수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쉽게 생각한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 한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너랑 아이를 아주 잘 돌볼 거야. 가정을 하나 더 꾸릴 돈과 시간이 있어. 내 의무를 다할 거야. 난 진짜로 널 사랑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사랑하고 있어. 이건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야. 할 수 있었다면 너랑 혼인했을 거야. 넌 내가 혼인하고 싶은 사람이야..."


한수가 이렇게 반응하는 까닭은 그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념이나 도덕처럼 무형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그런 것들은 모두 보기 좋은 허울로 바보들을 속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난 사업가야. 난 너도 사업가가 되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그런 모임에 갈 때마다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네 머리로 생각하고, 반드시 네 이익을 챙기면 좋겠어.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단체 생각에만 빠져 깝죽대는 놈들은 끝장나게 돼 있어."
한수는 민족주의나 종교나 심지어 사랑까지도 믿지 않았으나 교육은 믿었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 선자와 이삭


선자가 임신했을 무렵, 선자의 하숙집에는 이삭이 오사카에 가기 전 잠시 머물고 있었다. 이삭은 폐렴으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아팠지만, 선자와 선자의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회복한다. 그는 선자의 사정을 듣자 자신이 선자와 결혼하여 선자를 도와주려고 한다. 


"그 여인의 아이에게 제 성을 주는 겁니다. 제 성이 별것도 아니잖아요?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남자로 태어나는 은총을 입었을 뿐이니까요.(중략)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왜 아이가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이삭은 오사카에서 목사로 활동할 예정이었기에 선자는 이삭과 혼인한 후 바로 오사카로 함께 넘어간다. 이삭의 형인 요셉과 형수인 경희가 오사카의 빈민가인 이카이노에서 살고 있었고, 선자와 이삭도 이들과 함께 살게 된다. 


생활력이 강한 선자와 달리 이삭은 이상주의자적인 면모를 지녔다. 목사 봉급으로 한 사람이 먹고 살기에도 부족한 15엔을 받아도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선하고 다정한 이삭은 선자를 아내로서 존중하며 잘 대해준다. 선자는 한수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 노아를 낳은 후, 이삭과의 관계를 통해 아들 모자수를 낳는다.


어느 날 신사 참배 중 한 교인이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일본 경찰에게 들키고 말고, 그 일로 인해 목사인 이삭도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2년 동안 선자는 이삭을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삭은 모진 고문과 열악한 감옥 환경에서 극도로 쇠약해졌고, 죽기 직전에서야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보내진다.


"내 삶은 하찮았어요." 이삭이 고통과 피곤이 가득한 선자의 눈을 읽으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자신을 기다려줘서, 가족을 돌봐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선자에게 알려야 했다. (중략) "내가 당신을 여기로 데리고 와서 당신 삶이 힘들어졌어요." 선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른 채 이삭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나를 구했어예.' 이 말 대신에 선자는 말했다. "어서 나으셔야지예." "아들내미들을 위해서라도 나으시소." '당신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어떻게 키웁니꺼?' (중략) 두 아들이 자라서 학교를 마치고 혼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렇게 간절하게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오래오래 살고 싶어진 지금에서야 죽음을 앞두고 집에 보내졌다.



# 요셉과 경희


이삭의 형인 요셉은 자신의 형이나 동생처럼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믿음이 강하지 않다. 그는 그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는 사람이다. 남자라면 자신의 가족은 혼자서 거뜬히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가졌지만, 시대가 그 전통을 허락하지 않아 괴로운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 경희가 일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여 허락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 경희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고 만다.


요셉은 예쁘고 생기 넘치는 아내가 저녁밥을 차려놓고 자신을 맞이하는 집에 오기를 원했다. 그야말로 남자가 열심히 일하는 이상적인 이유라고 믿었다.
아내가 대부업자들 밑에서 일하는 것과 요셉이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나쁠까? 조선 남자에게 선택이란 항상 엿 같은 일이었다.


이삭이 죽은 후, 요셉은 크게 변하다. 우울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전쟁 중 큰 화상을 입은 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요셉은 진통제나 술에 의존할 수 없는 날엔 너무나도 큰 신체적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러나 요셉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일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남자로서의 자존심으로 알고 있는 그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차라리 요셉이 죽으면 훨씬 나을 터였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요셉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몸이 돼버렸고 가족을 돕기 위해 목숨을 끊을 수조차 없었다. 최악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자신이 가족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었다.



# 노아


노아는 탄생의 순간부터 복선이 깔려있다. 요셉은 선자가 값비싼 시계를 팔아 자신의 빚을 갚았다는 사실을 알자 분노한다. 대부업자들이 자신을 여자를 등쳐 먹는 사내답지 못한 사내로 여길 거라며 자존심 상해한다. 사실 빚은 빨리 갚는 것이 현명하고, 선자가 시계를 팔아 갚는 것 외엔 별다른 수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요셉은 떳떳하지 못한 돈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한다. 그렇게 요셉이 화를 낼 때, 선자의 진통이 시작된다. 


이는 나중에 선자가 노아의 대학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한수의 도움을 받고, 이것을 알게 된 노아가 이를 용납할 수 없어 결국 절연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요셉이 혼자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자존심이듯, 노아에게는 떳떳하지 않은 일은 한 톨도 섞이지 않은 채 모범적인 조선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자존심이다.


"노아... 그가 주님께 순종했고 주님의 뜻에 따랐으니까. 노아는 믿음을 갖기 어려울 때도 믿음을 가졌으니까"


노아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처럼 단단한 믿음을 가졌다. 바로 열심히 공부하고 선량하게 살아 좋은 조선인이 되면 일본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노아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우수한 성적을 냈다. 노아는 온갖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스스로가 조선인도 훌륭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기를 바랐다.


노아는 힘들 때마다 아버지 이삭을 떠올렸다. 이삭이 배운 사람이라는 사실은 노아의 자긍심이었다. 노아는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고결하지 않은 사람이나 일에는 절대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 최선을 다 한 끝에 노아는 와세다 대학에 합격한다.


그러나 와세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 등록금과 생활비가 문제였다. 선자는 처음으로 한수에게 돈을 꿔달라고 부탁을 하고, 한수는 자신이 모든 것을 내겠다며 후원자를 자처한다. 그러나 몇 년 후 노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실 한수이고, 한수는 야쿠자와 연관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충격을 받는다. 이삭의 고상함을 닮고자 부단히 애를 썼는데 사실 자신의 친아버지는 야쿠자이며, 자신이 그의 검은 돈으로 대학 공부를 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한다.


"난 평생 일본인들한테 내가 조선인 핏줄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선인들은 화가 많고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속임수를 쓰는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요. 평생 이런 소리를 견뎌야 했어요. 난 백이삭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절대 목청을 높이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 핏줄은, 내 핏줄은 조선인 핏줄이에요. 게다가 이제는 내가 야쿠자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절대 이 피는 바꿀 수 없어요."


노아는 새 삶을 시작하고자 가족과 절연하고 대학을 그만둔다. 그리고 작은 지방에서 조선인임을 숨기고 파친코에서 일을 하며 자신의 가정을 꾸린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사장이나 아내나 장모가 자신이 조선인임을 알게 될까 봐 늘 두려움에 떤다. 사실 자신의 사장과 장모가 이미 노아가 조선인일 것이라고 의심함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노아는 모른다. 


살아온 삶이 시커멓고 묵직한 바윗덩어리처럼 가슴에 걸려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십여 년 동안 선자는 노아를 보지 못하다가, 한수가 노아가 사는 곳을 찾아내 선자를 데려간다. 한수는 노아를 만나지 말고 멀리서 보기만 하라고 권하지만, 선자는 노아를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노아에게 달려간다.


"전 이 더러운 업계에서 일하는 조선인이에요. 야쿠자의 피가 흘러서 어쩔 수 없나 봐요 결코 그 사람의 피를 씻어낼 수가 없어요." 노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 "제가 받은 저주죠."
"제가 조선인인 걸 아무도 몰라요. 한 사람도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기다. 이해한데이. 내 뭐든지.."
"아내가 몰라요. 장모님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제 아이들도 모르고, 전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사장님은 절 해고할 거예요. 사장님은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아요. 엄마, 아무도 알면 안.."
"조선인이 되는 게 그리 비참하나?"
"제가 되는 게 비참해요."


간곡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권하던 선자가 떠나고 몇 분 후, 노아는 총으로 자살한다. 노아는 가족이 자신을 다시 찾아올 이 순간에 대해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일본인처럼 살고 싶은 것이 노아의 꿈이었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조선인이라는 뿌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죽음이 낫다는 것이 노아의 결론이었다. 선량한 조선인도 평범한 일본인도 노아는 될 수 없었다.



# 모자수와 유미


형인 노아와 달리 모자수는 선량한 조선인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것이 있으면 참지 않고 싸웠다. 조선인이 일본 학교에 다니면서 화날 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고, 선자는 모자수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모자수를 파친코 가게에 취직시킨다.


너희가 나를 짐승 취급한다면 진짜 짐승이 돼서 너희를 해칠 거야, 모자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자수는 선량한 조선인이 될 뜻이 없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이러니하게도 한수의 아들인 노아가 이삭처럼 공부에 뜻이 있었던 것과 달리, 이삭의 아들인 모자수는 한수처럼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모자수는 돈을 많이 벌어 선자와 경희가 힘들게 일하지 않기를 바랐다.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인정을 받고, 유미를 만나 아들 솔로몬을 낳는다.


유미는 조선에도 일본에도 아무런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이다. 유미는 언제나 미국에서 살 것을 꿈꾸며 영어를 열심히 배운다. 그는 조선인이 멸시받는 일본에서는 절대로 자식을 낳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고수한다. 일본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자리 잡고 싶어 하는 모자수에게 미국 이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유미에게 조선인이라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나 수치스러운 가족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끔찍한 멍에일 뿐이었다. 왜 거기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자신을 결코 사랑해주지 않는 의붓어머니 같은 일본에 붙어 사는 것 또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미는 로스앤젤레스를 꿈꾸었다. 
한 번은 솔로몬이 캘리포니아가 뭔지 묻자 유미가 대답했다. "천국이란다."



# 솔로몬 


솔로몬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며 일본인들과 함께 성장했지만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문서에서 솔로몬은 외국인이고 일본인에게는 타지에서 온 손님일 뿐이다. 


그렇지만 솔로몬의 내면은 일본인의 것인 부분이 있다. 솔로몬은 일본 정부를 비난하는 말을 들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일본을 두둔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과거를 소환하며 조선인의 아픔을 상기하는 것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솔로몬이 일본으로 완전히 귀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역시 솔로몬에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조선인 핏줄인데 조선을 수탈했던 일본으로 귀화한다는 것에는 내적 갈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솔로몬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외국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자 일본인이다.


가즈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가즈는 나쁜 인간 중 한 명이자 일본인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런 사고방식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것일 수도 있었다. 에쓰코는 솔로몬에게 어머니 같은 사람이었고, 하나는 솔로몬의 첫사랑이었다. 하루키도 삼촌 같은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일본인이었지만 아주 좋은 사람들이었다. 피비는 그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알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솔로몬도 일본인이었다. 피비는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핏줄보다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 파친코


확률이 적은 게임에 임해야 하는 자식에게 엄마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소설에 등장하는 두 엄마는 서로 다른 방식을 택하고, 각자의 이유로 이를 후회한다. 


선자는 아들에게 열심히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며 희망을 가르쳤다. 그러나 결국 노아는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여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절망하고 만다.


선자는 노아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고 고생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신이 물을 마시듯 들이마시던 수치를 참아야 한다고 아들에게 가르쳤어야 했을까? 결국 노아는 자신의 출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앞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한 일일까?
씨, 핏줄. 이런 한심한 생각에 어떻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노아는 규칙을 모두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면 적대적인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노아의 죽음은 그런 잔인한 이상을 믿게 내버려 둔 선자의 잘못일지도 몰랐다.


에쓰코는 자신의 불륜 때문에 같이 낙인찍힌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자식들에게 훈계나 조언 한 마디 하지 못한다. 에쓰코의 딸 하나는 절망으로 인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사는 것을 택하고, 결국 인생을 술과 매춘에 낭비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 매일 아침, 모자수와 직원들은 당첨 결과를 조작하려고 기계를 살짝 손봐서 돈을 따는 사람은 적고 잃는 사람은 많게 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했다. 어떻게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에쓰코는 이 중요한 면에서 실패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이길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어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파친코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에서 파친코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집결하는 한 점이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성공하는 가능성을 비유한다. 사실상 파친코 앞에 앉는 순간, 대다수는 패자로 끝이 난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보라고 할 것인가,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할 것인가? 미리 절망과 수치심에 익숙하게 할 것인가, 최대한 나중에 맛보게 할 것인가?



# 시마무라와 아키코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평범한 차별주의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나쁜 차별주의자들은 대놓고 멸시하고 차별한다. 자신이 차별한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평범한 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차별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요셉의 사장인 시마무라가 이 평범한 차별주의자 중 한 명이다.


사장은 모든 아시아 국가가 일본식 효율성과 장인정신, 수준 높은 조직 운영력을 갖춘다면 아시아 전체가 번영하고 부흥할 수 있고, 파렴치한 서구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시마무라는 자신이 마음씨 좋고 공정한 사람이라서, 친구들과 달리 외국인들을 고용한다고 여겼다. 친구들이 일을 대충대충 하는 외국인들의 천성을 지적하면, 시마무라는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무능과 나태를 혐오하도록 가르쳐야 그들도 배울 수 있지 않겠냐고 큰소리쳤다.


노아의 첫 여자친구인 아키코도 평범한 차별주의자다.


"난 네가 조선인인 게 부끄럽지 않아. 네가 조선인이라서 굉장히 잘됐다고 생각해. 전혀 개의치 않는걸. 무식한 사람들이나 인종차별주의자인 우리 부모는 언짢아하겠지만, 난 네가 조선인이라는 게 아주 좋아. 조선인은 영리하고 근면하고, 남자들이 아주 잘생겼어."


언뜻 보면 아키코는 조선인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키코는 노아를 한 사람이 아니라 조선인의 표본으로서 대한다. 아키코는 노아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해 조선인 남자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고 싶어 한다. 아키코는 노아를 사귀고 싶어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아키코에게 조선인 남자친구의 존재는 자신이 교육받은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표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인이 선량하든 불량하든 상관없이 노아를 조선인으로만 보는 것은 결국 불량한 조선인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키코는 노아를 한 인간으로만 볼 수 없었고, 노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저 한 인간으로 여겨지고 싶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 속할 수 없는 일본인들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인물들은 일본인임에도 일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이 일본에서 사는 조선 사람들에게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장면은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도축업에 종사하는 일본인은 두 번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선자를 호의적으로 대한다. 도축업은 신분제가 없어졌다 해도 여전히 멸시받는 직업이었다. 선자가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시장에서조차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도축업자는 선자의 김치를 처음으로 사준 손님이었다. 같은 조선 여자들조차 선자를 무시하고 껴주지 않으려 했지만, 이 도축업자는 선자에게 친절하게 웃어주고 김치의 맛을 칭찬해 준다.


모자수의 친구 하루키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장애 있는 동생과 함께 극빈하게 살아간다. 하루키의 가족은 저주받았다고 여겨져 좋은 거처를 얻을 수 없다. 하루키는 아이들과 어울리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도 하루키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다. 이런 하루키에게 모자수가 손을 내밀고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노아의 아내는 평범한 중산층 일본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공동체에서 쫓겨나야 했다. 모자수의 여자친구 에쓰코는 과거에 동창과 바람을 피운 사실이 들켜 이혼을 당하고 마을을 떠나야 했다. 마을에 남겨진 에쓰코의 자녀들은 모두 나환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성장해야 했다.


"일본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외국인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내 사랑, 너는 여기서 항상 외국인일 거고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어. 알겠니? 자이니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없지.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일본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을 절대로 사회에 다시 받아주지 않아. 나 같은 사람도 절대로 받아주지 않지. 우리는 일본인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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