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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Jun 26. 2022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2장

2장에서 저자는 과거의 윤리적 문제와 현재의 윤리적 문제를 비교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악덕을 이제는 볼 수 없음에 안도하고 뿌듯해하지만, 과거와 모습만 다를 뿐 똑같이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 19세기의 악덕과 현재


1. 권위주의

    과거에는 아이, 여성, 노동자에게 맹목적인 복종이 요구되었다. 이제는 이런 형태의 권위주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새로운 형태의 권위인 익명적 권위가 등장했다. 익명적 권위란, "그러지 마라."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난 네가 그러지 않을 거란 걸 안단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관용과 양보의 형식을 띠지만 그 안에 담긴 기대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시장, 여론, 획일주의, 사회적 압력 같은 것들이 바로 익명적 권위의 예이다. 우리는 이 익명적 권위에 굴복하면서 자유의지로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사실 현대인은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착각한다.

    저자는 권위는 공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개적이어야 저항할 수 있고, 논의를 통해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익명적 권위는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권위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저항을 할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다.


→ 이제 다수가 특정 주체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모두에게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마냥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기 때문에 더욱 촘촘하게 관리되며, 감시의 주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감시하여 순응하게 만든다.



2. 착취

    과거에는 끔찍한 노예 제도가 있었다. 이제 노예제는 철폐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만들고,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만든다. 스스로 사물이 된 인간은 병든다. 이 질병을 권태라고 부른다. 무의미하고, 허무하고, 지루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에 휩싸이는 것이다.



3. 차별

    과거에 극심했던 성 차별과 인종 차별은 오늘날에 이르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평등의 가치를 동일함의 가치로 왜곡한다. 동등한 권리를 위해서는 타인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타인과 같아지려고 한다.


→ 평등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획일화는 존재했다. 평등의 가치가 동일함의 가치로 왜곡되어 획일화가 진행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과거에는 나와 비교할 수 있는 타인의 수나 그들의 거리가 제한적이었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더 먼 거리에 있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맞춰나가는 것일 뿐이다.



4. 탐욕과 축재

    과거에는 아끼고 절약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덕목이었다면, 요즘에는 소비가 덕목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소비 없이는 굴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감정이나 관계마저 판매하고 소비하는 것처럼 대한다. 사람들은 소비만 할 뿐, 사물 말고는 생산해내는 것이 없다.


→ 소비는 내가 가치 있고, 안목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원래 이런 기분은 무언가를 창조해가며 느꼈어야 할 감정이다. 그러나 생산 방식의 변화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산에서 창조성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생산에서 잃어버린 것을 생산으로 얻은 돈을 소비함으로써 보충하는 것이 아닐까?



5. 자기중심적 개인주의

"내 집은 내 성이다. 나는 나다. 타인이여! 조심하라!"라는 명제로 대신 이제는 타인과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연결이 없는 것을 참지 못하게 되었다.


→ 내 집은 나의 성일 때, 이웃과는 연결을 끊었을지 모르지만 성 안의 가족 구성원들과는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과거에는 연결이 좁고 깊게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로 넓고 얕게 지속된다.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아닐까? 문제는 연결이 아니라, 실명의 연결이 익명의 연결로 교체되면서 나타난 여러 부작용들이다.




# 현대인의 극복 과제


1. 지성과 감성이라는 이분법 

    지성은 합리적이며 지성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하다. 비약적인 생산의 증가가 기술로 인해 가능해졌기 때문에 과학을 위한 지성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감정도 사고만큼 합리적일 수 있고, 이성과 일치할 수도 있다. 사고도 비합리적일 수 있다. 사고와 감정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 나름의 합리성과 논리가 있는 것이지 어느 것이 우월한 것이 아니다.



2. 비창조적인 소비와 수용의 태도

    창조성이란 그림, 음악, 시를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조성은 하나의 태도, 성격, 자세이다. 가령 책을 한 권 읽더라도 작가가 말하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내 안에 무언가 깨어나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도록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실제로 읽은 것이고, 책을 읽고 난 나는 달라진 인간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도 내가 똑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그 책을 그저 소비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산의 이름과 높이를 알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 산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이름, 직업, 가족 관계를 알면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한 것은 어떤 사실을 알거나 어떤 범주로 분류하는 것일 뿐이다. 창조적인 자세는 남김없이 직접 경험하고 본질을 경험하는 것이다.


→ 지성은 개별성보다는 보편성에 초점을 맞춘다. 보편성에 의존하면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감성은 대상의 개별성을 찾아나간다. 개별성에 집중할 때, 창조성이 발휘된다.



3. 수단인 사물과 목적인 인간의 전도

    지금은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다시 인간에게 윗자리를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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