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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Jun 16. 2022

4와 5의 다름을 당연하게 인정하기

15. 덕숭산 (2022.01.30 일)




"얼마나 높아?"

"400미터야. 금방 오르지."

"또 495미터를 400으로 말한 거 아니지?"

"...."


산행을 시작하기  항상 묻는 질문과 항상 하는 대답이다. 나에게 495 내림의 대상이다. 그래야 오를   힘들기 때문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판단이라고 말할  있다. 훈에게 495 반올림의 대상이다. 400으로 알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95 존재를 알게 되면 맥이 빠진다고 한다. 500으로 마음을 잡고 대비해야 산행이  힘든 타입인가 보다.


산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우리는 다름을 마주친다. 선결제 후 1/N 할 때, 단톡방에 나는 3,000원을, 훈은 3,520원을 청구한다. 무언가를 살 때, 나는 깎아달라는 말을 잘하고, 훈은 흥정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맛집에서 밥을 먹거나 영화를 관람한 후 별점을 매길 때, 나는 1점 혹은 5점의 양극단의 점수를 주는 반면, 훈은 3점을 주는 경우가 많다.


'물이 반이나 남았네! 물이 반밖에  남았네?' 긍정과 부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자기만의 (castle)이다.


따지자면 나는 모래성, 훈은 유리성인  같다. 모래성은 쉽게 무너지지만 금방  쌓을  있다. 다시 쌓을 때는 조금씩 변화를 주어 이전보다  멋진 성을 지을 수도 있다. 유리성은  튼튼하고 내부를   있다. 하지만 금이 가면 복구가 어렵고 내부도 왜곡되어 보인다.  


나는 여전히 495를 400으로, 훈은 500으로 생각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함께 산을 오르며 서로의 시선과 사고를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다. 서로에게 넘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교환하며 더 현명하게 산을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덕숭

2022년 1월 30일 일요일, 예산의 덕숭산에는 느긋함의 미학이 있다. 수덕사의 다채로운 색깔들도 산과 조화를 이루어 종교적 색채보다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볼거리가 많아서 즐거웠던 산이었다. 설 연휴, 방문객이 적을 때 잘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멋진 수덕사의 모습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구간에 수덕사의 화장실이 있다.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아주 따뜻한 화장실이다. 산에서 최신식 럭셔리 변소를 처음 만나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볼일을 마치고 온화한 불상을 지나면 풍경 없는 산길이 시작된다. 소림초당까지 올랐다면 1/3 이상 오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불상을 만나게 된다.



#지도보다 빠르게 오르기

만공탑에는 정상까지 45분(1.11km)이 걸린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올라 27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지도에 나와있는 소요시간보다 빠르게 산에 오르면 나름의 기쁨이 있다. 평균보다는 날쌔다는 것은 체력이 좋다는 전제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몸이 잔뜩 무거운 와중에도 부지런히 산을 오른 보람이 있다.



#언제나 좋은 정상

정상에서 후련함을 느끼며 예산을 둘러봤다.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예산의 분위기를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풍경을 보는 도중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있었다. 예산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여서 새삼 반가웠다. 올랐던 길을 고스란히 내려가는 것이지만 오를 때보다 무릎이 욱신거려 곡소리를 내며 조심히 하산했다.



#산행을 마치며

덕숭산은 생각보다 돌계단이 많고 험준하여  많이 휴식했다. 다행히 등산객이 적어 돌계단에 철퍼덕 앉아   있었다.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많으면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데, 덕숭산에서는 1, 2분씩 나눠서 여유 있게 호흡을 고르고, 땀을 닦았다. 충분히 쉰 덕분에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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