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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Aug 23. 2019

나에게 집밥은 치유입니다.

어린 시절 외로움을 치유하는 나의 집밥 이야기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오늘은 또 뭘 해 먹지?'라는 고민은 매일 머릿속에 장착하며 산다.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저렴하게 효과적인 한 끼 식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아무래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더욱더 그런지도 모른다.      



맞벌이하는 부부로 사는 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식비를 깨닫고 우리 집에는 ‘집밥’이라는 문화가 생겼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다.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하면서 우리 부부는 묘한 동질감을 가진 전우가 되었다. 냉장고가 가득 차면 답답함을 느낀다는 것, 반대로 냉장고가 텅 빈 냉장고가 되면 묘한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집밥을 향해 파고드는 냉파의 전우애.    



주방에서 남편과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아이들은 식탁에 위에 놓을 숟가락과 젓가락을 준비한다. 남편과 둘이서 부지런히 주방에서 수선을 떨고 나면 한 끼가 차려진다. 고기에 쌈 싸서 김치며, 두부며, 새우젓이며, 마늘, 청양고추를 팍팍 넣어 한입에 구겨 넣듯이 넣으니 한 숟갈에 많은 영양소가 몸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별것 없는 저녁 식사 한 끼지만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든든한 한 끼 식사 시간이 된다.     


한 식탁에 둘러앉아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은 무엇인지 묻기도 하고, 내가 직장에서 겪은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남편에게만큼 거스를 것 없이 털어놓게 된다. 부부 경력은 서로 동일하지만, 사회생활 경험만큼은 나보다 선배이니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남편의 충언 덕분에 현명한 직장 생활이 되는 보너스가 되기도 한다.   






가족의 또 다른 의미는
 식구(食口)가 아닐까?
삼시 세끼, 음식을 향유하는 것,
가족이 만든 음식을 향유한다는 자체가 식구가 아닐까?    




집밥, 별것 없는 메뉴라도 왠지 모를 특별함     




남편이 무더운 여름에 뜨거운 가스레인지 앞에서 후끈 달아오른 열기 앞에서 만든 음식을 아이들이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단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우리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특별한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래서 집밥만이 안겨주는 훈훈한 온도가 우리에게 식구라는 이름으로 에워싼다. 

 

집에 있는 밑반찬과 곁들이니 아무것도 필요 없을 만큼 최고의 식사다. 짧은 시간 내에 뚝딱 만들어낸 한 끼였는데 큰아이가 이렇게 맛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건강하면서도 저렴한 한 끼 식사에, 보람도 찾고 식구만의 유대감도 형성되니 말이다.     






내게 외로운 기억, 집밥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정 식구가 밥상에 모여 식사를 해본 기억이 없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친정엄마는 주말에도 출근하셨다. 늦은 출퇴근 시간이라 엄마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등교하면 엄마는 우리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출근하셨고, 우리가 저녁을 챙겨 먹고 잠들 무렵 퇴근하셨다.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해 질 녘까지 동네 친구들과 한 장 재미있게 뛰어놀다 어둑해지면 하나둘 동네 아줌마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람아 밥 먹으러 와라! 이제 집에 들어와" 

"무곤아! 밥 먹으러 와라! 해 떨어진다! 집에 와야지! 아빠 오실 시간이다!"    


대문 너머 동네 엄마들의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황금빛이 물드는 무렵, 동네 길목에서 유일하게 호명되지 못한 아이는 쓸쓸히 남은 나와 동생뿐이었다. 늘 퇴근이 늦은 엄마에게 우리 저녁을 챙기는 목소리는 꿈꿔볼 수 없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서 뭐든 해야 하는 법을 스스로 체득했기에 혼자 차려 먹는 밥상이 일상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대충 챙겨 먹는 쓸쓸한 밥상, 나에게 밥은 외로운 기억이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엄마가 만든 밥상에 퇴근한 아빠와 함께 하는 밥상, 누군가에는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그리움이 되는 일. 내게 집밥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밥은 다르다. 온 가족이 둘러앉은 이 시간이 누적될수록 어릴 때 가졌던 외로운 기억도 함께 치유하고 있다. 홀로 채워야 했던 외로운 밥상이 이제는 온 가족이 함께 채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외롭지 않다. 아프고 씁쓸했던 어린 시절 기억도 행복한 기억으로 덧발랐더니 차츰 치유가 되었다. 이제는 외롭지 않으니까.




워킹맘에게 집밥은 



워킹맘 초년생 시절에는 퇴근 후 귀가는 또 다른 출근을 의미했다. 출근 전, 여념 없이 바쁜 시간에 촉각을 세우며 나섰던 집을 치워야 하고 아이들도 씻겨야 하고, 밥도 챙겨야 하니 말이다. 24시간 육아와 업무로 숨 쉴 틈조차 없었던 것 같다.     


요리보다 일이 더 쉬운 전형적인 직장인이라 주방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공간이었다. 만약 내게 요리가 업무였다면 쉬웠을까?     


워킹맘인 나에게 당연한 이유와 공공연한 핑곗거리를 내세웠다. 나는 워킹맘이라는 잣대로 당연한 외식이었고, 합당한 배달 음식이었다.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을뿐더러 뭘 해 먹을지 메뉴 고민조차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냉장고 파먹기를 실천하면서 자연스럽게 집밥을 만드는 게 당연시되었다. 이제는 주방에서 느끼는 존재감은 다르다. 온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 앉아 우리가 만든 음식을 향유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깊은 시간인지 안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 아이들 정서적으로 안정을 채우겠지만 엄마의 자부심 또한 충만해진다. 아이들에게도, 부모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다가온다.     

엽이 어릴 때부터 맞벌이하는 우리를 위해 양가 어른들께서  챙겨주시는 밑반찬도 제때 챙겨 먹지도 못하고 상해서 버리기 일쑤였다. 지금이면 충분히 잘 해먹을 자신이 있는데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는 음식 아까운 줄 알고, 남은 재료로 응용 음식까지 할 줄 아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가끔 식당에서 시어머니가 해주시던 그때 그 맛이 나면 예전 생각이 난다. 지금은 두 번 다시는 맛볼 수 없지만, 


예전에 TV 방송 무한 도전에서 '배달의 무도'라는 특집 프로그램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외국에서 근로하는 한국인을 찾아가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몰래 차려주는 방송 편이었다. 물론 레시피를 배워서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차린 음식이 먼 타국까지 올 리가 없는데 자식들은 하나같이 '우리 엄마가 해주던 맛과 똑같다'라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먼 타국에서 근무하는 자식을 자주 보지 못하는데 내 손으로 만든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헤아려주는 방송이라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부모님도 먼 타국에서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식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식구'라는 단어가 참 의미 깊게 다가왔다. 가족만이 알 수 있는 음식의 맛, 향기, 감각, 오롯이 그 음식을 향유한 식구만이 느낄 수 있다. 나는 그게 집밥의 정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자라서

'아! 이거 엄마가 해주는 음식 맛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만큼 요리 실력이 좋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엄마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향기,

미각만으로 엄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음식을 만들고 싶다. 

음식 하나로 추억이 떠오르고 따뜻한 고향이 될 수 있기를 

내가 만든 요리가 아이들에게 진한 향수로 남아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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