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푸 Mar 06. 2023

땅만 180평, 시골 주택에 삽니다.

이사만 16번을 다녔다.

딸 둘에 아들 하나, 우리는 다섯 식구였는데 다사다난한 가정사로 참 많은 이사를 다녔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가정사가 있으랴.) 초본을 발급하면 3장이었나 4장이었나 주르륵 펼쳐지던 그동안의 이사고행이 한눈에 나열됐다. 


그러다 내가 고등학생이 돼서야 우리 가족은 한 집에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는데 가족들의 방랑병이 도졌는지 여동생은 외국으로, 나는 직장에 취직하자마자 그 집을 떠났다. 


5평 원룸에서 시작한 첫 자취는 9평 원룸을 거쳐 결혼을 했고, 11평 투룸, 30평대 쓰리룸, 그리고 지금은 쓰리룸 시골주택에 터를 잡았다. 

난생처음 살아본 30평대 쓰리룸.

남편의 이직 덕분에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했다. 말이 좋아 세종이지 우리가 처음 터를 잡았던 세종은 집 앞에 논과 밭이 있고, 닭이 울고, 경운기가 다니던 시골이었다. 이 집에서 2년을 살아보곤 우리는 시골주택을 매수하기로 했다. 


-시골 주택을 사고 싶어
시골집을 사면 집 값도 안 오르고 잘 팔리지도 않을 텐데, 게다가 시골 텃새도 있다는데 그거 어떻게 하려고?

시골 주택을 사겠다고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돌아오던 소리는 언제나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시골 주택을 사려고 준비하던 2021년 말부터 2022년 초는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특히 세종의 아파트 가격은 놀랄 노자 었다. 

아파트 한 채로 몇억씩 벌었다는 사람들의 간증이 쏟아져 나왔고, 부동산 투자, 코인,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는 시골 주택을 사겠다고 하니, 주변 지인들은 얼마나 철없는 어린애로 봤을까. 


그런데 그때의 나는 시골에 푹 빠져있었다. 사는 곳이 도시에서 시골로 바꼈을 뿐인데 자연이 주는 상쾌함, 눈에 보이는 결과가 다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문,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사는 삶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식해나갔다. 


한마디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씩 바뀌던 시기. 그런 가치들을 실현하기엔 시골 주택만큼 효과적인 곳도 없겠다 싶었다. 


게다가 방랑병이 또 도졌을 수도.


3개월 동안 정말 많은 시골집들을 봤다. 토지이음, 택지분양, 도로지분, 철콘과 경량철골... 같은 처음 듣는 단어들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3개월 동안 온갖 정보들을 수집하고 배우고 익히며 실제로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이제 슬슬 시골 주택을 고르는데 중점적으로 봐야 할 건 무엇인지, 지적도를 왜 봐야 하는지, 혐오시설은 뭐가 있는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돌아보고, 계약을 한 집이 

대지 180평, 건축물 28평의 지금의 집이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땐 이게 180평이라고? 싶었다. 30평대 집에서 살 때의 기준으로 6배나 커졌는데 전혀 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골 주택의 180평은 내가 생각했던 180평과 달랐다.


산을 깎아 만든 땅에 이 집을 처음 건축할 때 인근 토지주와의 마찰 때문에 석축을 쌓으며 쓰지 못하는 땅이 -50평, 언덕 진입로 -8평, 그 외 자잘하게 쌓은 조경석 -20평 등 약 -80평의 땅을 사용하지 못했고, 남은 100평 위의 땅에 집을 지었는데도... 집이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확하게 구분된 택지와 진입로, 잔디마당은 없지만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멘트 마당, 차 두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 외 자잘한 이유들로 이 집을 계약했다. 


시골로 내려올 때 즈음부터 나는 간소한 삶,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고민했다.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광고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일상에 힘들었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수템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해야 할 일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내가 이렇게 가져야 할 것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이 일상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지쳐갈 때즈음 시골로 내려왔고,

시골 주택에 살게 됐다.

시골 주택에 살아보니 도시에서 사용하던 필수템들도 크게 필요하지 않았고,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하는 일보다 직접 몸을 움직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가령 채소를 수확하기도 하고 땅을 갈아엎기도 하고 마당을 쓸기도 하는 자잘한 일들 말이다. 이런 일들은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겠는데? 싶었다.


그렇게 나는 시골에서 3년째 살고 있다. 



youtube.

 https://www.youtube.com/@goeun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im_goeunny/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을 떠나다. 나는 왜 30대에 시골에 내려갔을까_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