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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찐 병아리 Nov 17. 2015

울고 싶은 방

눈물이 있어야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최근 가장 재밌게 읽은 박진진 작가의 저서 <크라잉 룸> 400페이지가 넘는 긴 에세이 책입니다.

제가 좀 돌직구 스타일이라 빙빙 돌려서 예쁘게 수식하는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크라잉 룸>은 유하면서도 날카롭고, 도도하지만 진실되고, 진지하지만 유쾌한 책이라 제법 긴 분량임에도 집중하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크라잉 룸, 내 맘대로 해석해서 "울고 싶은 방"

요즘처럼 울고 싶은 일이 많을 때는 정말 나 혼자서 마음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저런 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당신에게도 울고 싶은 방을 만들어 준다고 하면 당신이 원하는 울고 싶은 방은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원하는 "울고 싶은 방"

가장 먼저 형광등 노노노! 절대 안됩니다.

1)무조건 은은한 빛이 아름다운 작은 백열등이 테이블 옆에 놓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달콤한 복숭아 향의 초들이 더 은은한 빛을 밝혀줬음 좋겠습니다.

천장은 날이 좋으면 소파에 누워서 3)밤 하늘에 뜬 별과 달이 보이게 작은 투명한 창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으스스한 느낌이 들면 투명한 창을 가릴 수도 있게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저는 소중하니까요.


눈물 콧물 펑펑 흘릴 각오로 들어왔으니 각티슈 대신 4)하얀 면소재에 꽃자수가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는 깨끗한 손수건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약한 제 피부도 소중하니까요.


5)거울은 공주풍의 큰 손거울이면 좋겠습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원치 않아도 보게 되는 큰 거울 말고요.

보고 싶을 때만 볼 수 있게 테이블 위에 손거울을 뒤집어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6)방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벽은 어두침침하지 않게 7)아이보리색 벽으로,

8)테이블은 웃으면서 들판을 달리는 광년 느낌의 캔디와 샤방샤방한 테리우스가 찐하게 키스하고 있는 원형 테이블로 준비해 주시고요.

테이블 색은 촌스럽지 않은 파스텔톤 분홍이었으면 좋겠습니다.

9)테이블 앞엔 역시 촌스럽지 않은 파스텔톤 분홍색 푹신푹신 소파로 깔맞춤 했음 좋겠습니다.

소파는 언제든지 울다가 잠들 수 있도록 아주 넓은 사이즈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겁이 많습니다.

혼자서 어두컴컴한 방에서 울다가 내 모습에 내가 화들짝 놀란적이 많지요.

그래서 "울고 싶은 방"만큼은 유치하더라도 포근하고 밝게 만들어줬음 좋겠습니다.


10)잔잔한 클래식 음악은 필수겠죠?

클래식 음악만 듣다가는 울다가 꾸벅꾸벅 졸릴 수 있으니 애절한 이별 발라드도 함께 추가해 주세요.

팝송은 그냥 넣어두세요.

무슨 말인지 들어도 못  알아들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울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을 수 있도록 11)테이블 위에 노트와 볼펜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퍼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울다가도 글은 써야죠... 이런 게 다 밥벌이의 고단함 아니겠어요.


제가 원하는 "울고 싶은 방"은 "눈물로 치유 되는 방"입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방

정말 이런 방이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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