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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ly 케일리 Oct 24. 2022

최고의 인생을 위해 사다리부터 옮겼다

영화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最高の人生の見つけ方)> 리뷰

시한부 소재 영화는 쉽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개과천선, 절절한 이별엔 애틋함이 있죠. 대체로 식상한 전개를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아는 맛이 더 맛있는 걸까요? 시한부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은 쉽게 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는 맛"이라는 뻔한 전개의 사다리 타기 게임에서 사다리 몇 개를 옮겨 약간은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그중 2019년, 일본에서 개봉한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最高の人生の見つけ方)>입니다.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最高の人生の見つけ方)>

키타하라 유키에는 가족을 위해, 고다 마코는 회사를 위해 살았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것. 집과 일 외에 할 일 없는 삶의 공허함을 깨달은 유키에와 마코는 12세 소녀의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목록"을 수행하고자 무모한 여정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결코 하지 못했던 일에 뛰어든 두 사람. 그들은 처음으로 알게 된 삶의 기쁨으로 반짝이고, 가족, 주변 사람들, 심지어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여정에 참여시키고, 삶을 변화시킨다.

(일본 아마존의 영화 정보를 번역했습니다.)


이 영화는 2008년 개봉한 미국 영화 <버킷리스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은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았지만, <버킷리스트>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버킷리스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비사 카터와 백만장자 잭이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고, 카터가 적은 버킷리스트에 잭의 소망을 덧붙여 두 사람이 자신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모험을 보여줍니다.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카터가 삶을 즐기는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동정을 강요하는 억지스러운 가족 서사, "미녀와 키스하기" 등의 형편없는 버킷리스트 때문에 "꼴값"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대사가 쓰레기라 그런가 계속 잘린 채로 캡처됨. 넌 그냥 그만 살아, 인마.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은 10년 넘게 흘러 리메이크된 만큼, 이러한 단점을 잡고 "진짜 값진 인생을 보여줄 교과서"처럼 등장했습니다. 리메이크 작품답게 큰 틀은 유지하면서 사다리 몇 개만 옮기는 센스를 보여줬죠. 원작과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를 꼽자면 카터를 대신할 키타하라 유키에, 잭과 같은 부자 역의 고다 마코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남자일 때, 여자일 때 모두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주인공들의 성별을 바꿔버림으로써 원작과 시각적으로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어요.


특히 백만장자의 설정 변화가 굉장히 매력적인데요.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은 잭의 불친절하고 몰상식한 면모와 이질적인 자식 사랑을 과감하게 없앴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유통기한 지난 조미료를 전부 덜어낸 요리처럼 빛을 톡톡히 봤어요. 돈만 믿고 오만했던 부자의 반전 매력, 조금 식상하잖아요? 되려 입원 치료를 반복하는 와중에 회사까지 챙기는 고다 마코의 지적인 모습이 이 부자에게 더 관심을 두게 합니다.

앞서 옮긴 사다리들은 극의 분위기뿐 아니라 두 주인공의 결말마저 바꿔 놓습니다. <버킷리스트>에서 먼저 죽게 된 카터가 잭에게 편지를 남긴 것과 달리,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에서는 고다 마코가 먼저 세상을 떠나며 키타하라 유키에에게 편지와 수표까지 남긴 것인데요. 고다 마코 역을 맡은 아마미 유키가 "교훈 주는 커리어우먼" 전문 배우여서 그런가, 그녀가 출연한다고 하면 어떤 가르침을 줄지 기대하게 됩니다. 아마미 유키의 울림을 주는 눈빛과 설득력 있는 목소리에 담긴 백만장자의 인생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 영화가 옮긴 마지막 사다리는 바로 "버킷리스트 작성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시한부 소재 영화는 흔하고, 죽음을 앞둔 주인공들의 버킷리스트 작성은 필수 과목 같은 절차입니다. 모두가 죽는다 하면 갑자기 억울해하며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하는 게 "국룰"이죠. 그런데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 속 키타하라 유키에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정말 가족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엄마가 완전히 개성을 잃어버린 모습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과 더 닮아있기에 마음이 갑니다.


그럼 이들의 버킷리스트는 고다 마코가 쓰냐? 그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의 버킷리스트를 쓴 건 같은 병원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어린 소녀였습니다. 어린이의 시점에서 하고픈 것들을 적은 건데, 우연히 종이를 갖게 된 두 사람이 아이의 버킷리스트에서 삶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며 대신 이루게 된 것이죠. 소녀의 서사에도 반전이 있지만, 그 반전이 물 부족 현상도 막을 눈물 수도꼭지 개방에 크게 기여했기에 비밀로 남깁니다.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만의 황금 사다리, 영화로 확인해 주세요!

사실 "죽을병 걸린 주인공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발등에 불 떨어지고 나서야 벼락치기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게 너무 답답하거든요. 멀끔한 직장에 다니며 소확행도 살뜰히 챙겼으면서, 왜 죽는다고 하면 그렇게들 삶의 가치에 의문을 품는 걸까요? <최고의 인생을 찾는 법>의 버킷리스트가 가치 있었던 건, 버킷리스트가 '주인공 한 풀어주기 프로젝트'라는 일반적 정의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한부 소재 작품은 삶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유골은 우주선에 실려 발사됩니다. 덕분에 이들이 다른 차원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계속 여행을 즐기고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안겨줬어요. 두 주인공 모두와 이별해야 하지만, 그들을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어 기분 좋은 영화였습니다. 죽음이 닥치기 전에 지금부터 엣지 있는 버킷리스트 한번 써보는 건 어때요?


생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어린이의 염원에 정말 삶이 무료한 어른들의 갈증을 더한 <최고의 인생을 찾는 >만의 매력적인 사다리 타기 설계법. 쳇바퀴 같은 삶에 익숙해진 "어른이" 여러분께 현실적인 중년들의 동화 같은 모험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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