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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Oct 21. 2015

런던에 부딪힌 계란 하나

(Feat. 삶은 계란, 삐약)

어떤 도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기나긴 여행을 하는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때마다 딱 떠오르는 도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런던'이다.

정해진 일정에서 가장 저렴한 비행기 표를 찾다가 걸린 나라.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던 도시.

하지만 그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던 곳.


크로아티아 여행을 하며 '무작정 걷기'라는 나만의 여행 방식에 대해 약간의 자부심과 나름의 만족을  느낀 터라 비행기와 숙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예약만 마친 채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런던 게트윅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 대책 없는 여행자에게 런던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국 심사대

영국 입국 심사가 유난히 까다롭다는 것은 여행자가 아닌 사람도 알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그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때까진 운을 믿었던 것 같다. 모바일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이메일로 발송된 e티켓이 전부인 채 낯선 영국인 앞에 섰다. 그녀는 내가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어떤 목적으로 런던에 방문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꼼꼼히 물었다. 조금은 부족한 영어로 '이 정도쯤이야'하며 질문들을 무사히 통과하고 있을 때 즈음, 그녀는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요구했다. 


티켓은 이메일에 접속해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와이파이가 끊긴 상황.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단호한 표정만 돌아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차가운 공기에도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변명도 해명도 부탁도 하지 않는 나에게 그녀는 공기보다 차가운 얼굴로 '다음부턴 티켓을 꼭 챙겨오라'는 말을 남기고 도장을 찍었다. 


쾅, 그 소리가 몸의 모든 세포를 깨우는 듯했다. 그리고 불길함이 엄습했다.

이곳은 달랐다. 그간의 여행지들과 달랐다.

그럼에도 예약해둔 버스가 생각나 부지런히 공항 밖으로 향했다.

주저앉아 버리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공항 버스

시내까지 가는 저렴한 공항 버스를 온라인으로 예매한 후 바코드와 예약번호를 캡처해 간신히 시간 내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짧은 줄을 서자 금세 내 차례가 다가왔다. 바코드를 내밀었다. 종이를 요구했다. 바코드와 예약자인 나의 영문 이름과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여권을 내밀었지만 강한 억양의 그녀는 오직 종이만을 요구했다. 프린트한 티켓이 없으면 확인할 수 없어 탑승이 불가능하다는 것. 예약을 바꾸는 것도, 취소하는 것도 모두 내 탓이고 나의 몫이라고 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났지만 돌아섰다. 좌절할 시간이 없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숙소로 찾아가야 했다. 기다리는 친구도 있었다. 공항으로 달려가 코인 컴퓨터에 있는 남은 돈을 털었다. 하지만 프린터는 고장난지 오래인지 돈만 빠져나갈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이 두 번째 버스 시간도 지나갔다. 


웅성거리는 공항의 소음이 내 옆을 스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멍했다. 갑작스레 눈물이 났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누구든 붙잡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자신이 관리하는 파트가 아니라며 모두들 바쁜 걸음을 이어갔다. 마냥 울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버스 표를 새로 구매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진 도보 10분 거리라고 들어왔고, 예약 사이트에 있는 설명과 사진을 수 십 번 복기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의 멘탈 붕괴를 겪은 내게 터미널은  또다시 새로운 도전이었다.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았고, 어둠이 찾아오자 밤공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연락했던 친구가 도착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알음알음 와이파이를 찾아 2시간을 더 기다렸다. 더 이상은 좌절할 힘도 우울할 힘도 눈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친구를 만났으나 우린 함께 길을 헤매었다. 숙소 주인과 통화가 되지 않았다. 시간은 또 흘렀다. 그렇게 한 끼도 먹지 못한 채 런던의  첫날 밤을 맞이했다. 아니 둘째 날 밤 새벽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8시간이 걸렸다. 35파운드를 길에 뿌렸다. 



세 번의 불행이 끝없이 닥쳐오자 나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무너졌다. 가장 먼저 입이 닫혔고, 귀가 닫혔다. 마지막엔 눈마저 닫혔다. 인식이 멈추자 판단이 불가능해졌다. 판단할 수 없게 되자 한낱 단백질 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극악의 절망은 잠시였다. 최악의 기분은 스쳐갔고, 내겐 계속해서 다가오는 지금, 이 시간이 남아있었다. 지금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판단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다시 내게로 향했다. 


당혹스러움도 절망도 포기의 감정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어났다. 그래서 걸었고, 방법을 찾아 나섰다. 한국에선 무력함을 동반했던 끔찍한 감정들, 이겨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상황들. 도리어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하자 하나 둘 해결해갔다. 


생각이 이곳까지 미치자. 지금까지 내 인생을 휘둘렀던 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때까지 나의 현재는 과거에 얽혀있었다.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손을 놨던 과거의 일들, 감정들. 어쩌면 나는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절망을 마주하기도 전에 고개를 떨궜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지레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것은 힘든 상황 자체가 아니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나태하고 태만하고 자존감이 없던 나 자신이었다.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나는 숨죽이고 한참을 울었다.

지난날의 나를 위로했고, 오늘 하루의 나를 격려했다. 그리고 변해갈 내일의 내 모습에 기뻤다.


런던에서의  첫날.

스물일곱 해동안 유지한 단단한 껍질이 완전히 깨졌다.

계란 속에는 여린 노른자 대신 작은 공간에서 답답해하던 병아리 한 마리가 있었다.

불안함은 기우였고, 걱정은 과잉보호였다.


내가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선

스스로 깨져야 했다.

그리고 런던은 내가 처음 홀로 마주한 돌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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