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가장 좋은 동반자

(Feat. 지나친 음주는 지방을 가져옵니다)

by 알 덴테 도마도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카페인을 흡수하지 못하는 몸이기 때문에.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끊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도박을 하지 못한다.

겁이 많은 천성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참 많은 중독들을 용케 피하면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술이다.


어린 시절, 퇴근한 부모님이 매일 저녁 반주를 즐기시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쓰고 맛없고 다음날이면 피로함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부모님의 퇴근 길에는 어김없이 소주 두 병이 담긴 검은 봉지가 함께했다.


천성일까. 그저 취하는 즐거움에 술맛을 제쳐두고 즐겼던 이십 대 초반과 달리 지금의 나는 술을 꽤나 즐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일을 마치면 아침의 결의는 잊은 듯 항상 맥주 두 캔이 담긴 비닐 봉지와 함께 퇴근했다.

여행을 할 때면 늘 가장 좋은 경치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가장 슬픈 날에도, 가장 기쁜 날에도 사람은 없어도 맥주는 있었다.


혼자인 삶이 익숙해지자 술은 동반자처럼 다가왔다.

외롭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극한의 외로움을 느낄 정신도 없었다.

술은 그랬다. 내게 가장 고요한 시간을 줬고, 꿈 없는 잠을 선사했다.


두브로브니크의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마신 맥주 두 캔을

스플리트의 석양을 바라보며 들이킨 맥주 한 캔을

런던 브릿지에서 일행과 나눈 맥주 한 캔을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사람들과 왁자지껄 함께한 와인을

포지타노에서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한 고소한 생맥주 한 잔을

기숙사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신 소주 한 병을

세느 강변에서 기울인 맥주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삶이 겹겹이 쌓이자 술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리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도리어 살아가며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완성해주고 있으니까.


특별히 크로아티아에서의 시간들은 고되고 지치고 외로웠기에

술을 더 가까이 했다. 그래서 그날의 생채기들은 아물지 않고 아픈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그 시간들을, 그 상처들을, 그 고통을.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돼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떠나던 마지막 날까지 내 손엔 맥주 두 캔이 담긴 비닐봉지가 늘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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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동창에게서 '뼈밖에 없던 애가 왜 이렇게 통통해졌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술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늘 하면서도 나는 빈 맥주잔을 들고 말한다. "여기 500 추가요!" 그저 술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돼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