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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Sep 16. 2015

무엇을 위해 여행하나

(Feat. 길 위의 방랑자)

자그레브(Zagreb)에서 시작된 크로아티아 여행.

이른 아침, 야간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 나는 다시 여행자가 됐다.

호스텔에서 우연히 얻은 여행 책자를 손에 꼭 쥐고 걷기 시작했다.


걷고 걸었다.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두브로브니크와는 다른 모습이 보였고, 수도의 활기참이 느껴졌다. 나와 같은 여행자도 있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많아 보였다. 그게 좋았다. 별 것 아닌 그 느낌이 좋아 걷고 걸었다. 한 달을 꼬박 아팠던 다리도 다 나은 사람처럼 그렇게 걸었다.


책자 속의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고,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블로그 속의 어떤 사진보다 아름다웠다. 누군가의 말처럼 프랑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독일처럼 무뚝뚝하지도 않았다. 서유럽의 여느 풍경 같으면서도 구석구석에는 동유럽의 향기가 배어났다. 


수 십 번 길을 잃었을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만 반응했다. 한참을 걷다 문득 내게 목적지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수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도, 성당과 교회도 특별히 찾지 않았다. 한숨을 돌리겠다고 멈춘 곳이 목적지였다. 그렇게 걸음의 반경 내에서 피부로 느낀 자그레브. 사진과 하루 일정을 정리하던 저녁, 나는 아주 오랜만에 여행의 기쁨을 알게 됐다.


아침은 맥도날드에서, 점심은 바나나로, 저녁은 아시아 식당에서 때우듯 해치웠고, 책자 속에 수두룩히 실린 명물들은 손에 꼽을 정도만 볼 수 있었다. 블로그에 여행기라 올리기엔 허술했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바꾸자니 한국에서 찍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특별한 장소가 없었다. 자랑하기엔 한 없이 부족한 여행 일지였지만 첫 날의 자그레브에서 지난 여행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보고 즐기는 것. 누군가 맛있더라 하고 올린 집에 꼭 가야 했고, 아름답더라 극찬하던 포인트에서 가장 멋진 인증샷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말에 친구와 수 없이 셀카를 찍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쉼 없이 움직였고, 이동 중의 풍경은 쉬이 흘려버렸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정말 사진뿐이었다


하지만 자그레브의 첫 날은 달랐다. 아주 오랜만에 캐리어 없이 떠나온 여행지에서 7일 간의 짐을 이고 지고 골목을, 공원을, 시장을 누볐다. 1시간이 넘도록 한참을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했고, 시장에서 이곳저곳 가격을 비교하며 바나나 한 송이를 사기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크로아티아 사람과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며 고작 1박 2일을 머무는 여행자가 알 수 없을 크로아티아의 상황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첫 날, 이렇다 할 멋진 사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그래도 사진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여러 기억과 경험을 얻었다.


그리고 나를 닮은 작은 자동차 장난감을 하나 발견했다.


늦은 저녁, 바람이 좋아 나온 산책 길에서 현지인들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공원 벤치 위에 놓여있던 장난감.

고장 난 자동차를 손으로 한껏 밀며 놀았을 아이의 손길이 느껴졌다. 엄마의 부름에 놀라 뛰어갔을 한 아이를 상상했다. 그리고 한참을 남겨졌을 장난감을 바라봤고, 사진을 남기고, 내 손에 얹어  한쪽 바퀴가 성치 않은 자동차를 한껏 밀어봤다. 


느리지만 어딘가 부족하지만 분명히 완벽하지 않지만 길 위를 방랑하는 나처럼 그 자동차 장난감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누구도 묻지 않지만 자신만의 추억으로 그 시간을 그 공간을 그 공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 분명 이곳이 아니었으면 이 자동차 장난감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진보다 선명한 기억과 추억을 마음에 새기며 여행에 '느리게 걷는 시간'을 더하리라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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