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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ug 31. 2015

밤을 기다리는 도시

(Feat. 손떨림이 원망스럽구나)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되도록이면 '보자'라고 다짐하는 것이 바로 전경과 야경이다.

전경의 경우 도시마다 있는 탑이나 뷰 포인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야경은 상하이나 홍콩, 프랑스의 파리처럼 특별히 랜드마크처럼 알려져 있지 않는 이상 발품을 팔아 찾아야만 한다. 물론 발품을 찾는 경우가 내게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긴 한다.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낮과 밤의 경치가 다른 경우를 자주 봤다. 모두 좋을 때도,  한쪽의 의외로 월등히 좋을 때도 있었다. 찌는 태양을 싫어하는 흔한 한국 여자인 나는 역시 낮보다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등치도 산만하기에 안전(..)하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 덕분에 매 도시마다 야경을 열심히 즐기는 편이다. 내가 느낀 두브로브니크는 어떨까. 


나는 매일 해가 지길 기다렸다


실제로 올드 타운(Old Town)의 항구 근처에는 해가 지길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바다를 끼고 있어 선선한 바람이 불고, 특별히 기상이 나쁘지 않은 한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정말 정말' 안전하다는 것. 전적으로 사견이지만 그렇다. 아무튼 나는 매일 해가 지길 기다렸다. 


성벽과 스트라둔 대로, 골목골목에 등불이 켜지면 두브로브니크 올드 타운은 황금색으로 물든다. 하늘은 짙은 파란색으로 변해 그야말로 야경 사진에 최적화된 환경으로 변한다. 덕분에 해가 질 무렵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느 곳보다 내가 두브로브니크의 야경을 사랑하는 이유는 서울의 야경과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적 도시의 상징인 그 흔한 아파트 혹은 빌딩을 이곳에선 볼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상점들이(몇몇 레스토랑 제외) 10시 이전에 문을 닫기에 이곳의 야경은 등불과 각각의 집에서 뿜어나오는 불빛으로 이뤄진다. (물론 호텔과 호스텔도 포함되겠지만) 서울의 야경을 야근의 야경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어왔던 내게 이곳의 야경은 그 어느 곳보다 편안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혼자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저녁. 이들의 밤을 바라보며 지난 1년 반을 돌이켜봤다. 온가족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때부터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하는 시간은 한 달에도 손을 꼽았다. 누군가 꼭 한 사람은 야근을 하고 있거나, 주말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내게도 밤이라는 시간은 그랬던 것 같다. 수면 시간을 포함해서도 몇 시간 남지 않은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가장 편안했던 시간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브로브니크에서 일했던 두 달의 시간. 나는 매일 밤을 기다렸다. 밤이면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좋아서, 따뜻한 불빛들이 좋아서, 이들의 여유로움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나 역시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낼 수 있는 편안함이 좋아서. 



덧, 하지만 야경 촬영을 할 때마다 내 손이 얼마나 부들부들 떨리는지 사진들이 증명할 때마다 내 손을 원망하며 맥주 한 캔을 뚝딱한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이 맥주가 원흉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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