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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Aug 21. 2015

그렇게 어른이 된다

(Feat. 지독한 성장통과 함께)

혼자라는 외로움과 꿈을 향해 달린다는 희망의 불씨.

불안정한 감정선은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 내리락했다.


정 붙일 누군가가 있는 것도, 특별히 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일 밖에 없었다.


모처럼 꺼내 든 카메라와 준비한 말, 수차례 복기한 동선.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긴장하다가 눈 깜짝 사이에 약속한 모든 시간이 흘러갔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몰려오는 저녁. 터덜터덜 6인실 호스텔로 향했다.

차례를 기다려 샤워하고, 저녁 대신 맥주 한 캔을 딴다.

촬영한 사진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문자를 남긴다.

데이터를 옮기고, 여러 장 셀렉을 마치고, 메일로 보내고..


모든 것을 마치면 시계는 자정을 향하고, 방 안의 불은 누군가의 부탁으로 소등된다.

이후에도 방 안은 휴대폰의 불빛들로 채워진다. 

밤이 깊어지면 마저 남은 휴대폰의 불빛들도 사라지고, 비로소 진짜 밤을 맞이한다.


얼마나 무릎을 꿇었었나, 얼마나 뛰어 다녔던가.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긴장이 풀리는 밤이 되면 온몸이 부서지는 듯 아파왔다. 

무릎은 서 있기도 누워 있기도, 앉아 있기도 어려웠다. 

통증에 입을 악물고 울다가 잠든 날이 부지기수였다. 

유난히 아팠던 어느 새벽, 나는 어둠 속에 들리던 소리를 기억했다.

세탁소를 하는 부모님은 환절기 중에서도 봄이 되면 무척 바쁘셨다. 새벽 같이 출근해 자정이 넘도록 일하는 날이 많았다. 주말도, 빨간 날도 쉬지 못했다. 서로 얼굴을 보는 일도 힘들던 그때 나는 새벽마다 고통으로 끙끙거리는 엄마의 소리를 들었다. 스치듯 봤던 엄마의 손목에는 늘 무언가로 감겨있었고,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갈라지고 터진 피부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늘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결코 어리지도 않았던 나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으니까. 내게 봄이라는 시간은 부모님의 부재와 새벽에 들리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 하얀 붕대와 밴드로 기억된다.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 엄마는 나의 롤모델이 아니었다.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그랬던 내가 두브로브니크에서 엄마의 모습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마땅한 약도, 해결 방법도 없이 매일 밤을 앓았다. 

어느 날은 너무 아파 울고, 어느 날은 혼자 아픈 게 외로워 울고, 어떤 날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울었다.

그렇게 나는 소리도 낼 수 없는 잠잠한 6인실 호스텔에서 홀로 참고 이겨내고 있었다.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단 한번도 '아프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는 내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고 싶지 않아서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잘 지낸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프지 않다'며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고집은 익숙해졌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지고,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 돼도 나는 고통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떠나온 나의 선택에 따르는 모든 결과를 내게로 돌리는 것.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가는 것. 그리고 이겨내는 것. 눈물로 얼룩진 베개 속에서 매일 밤 스스로에게 '왜 떠나와야 했는지' 물었던 시간들. 


그렇게

두브로브니크의 짧지만 깊은 밤 속에서 성장통과 함께 나는 엄마를 닮은 어른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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