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치는 시선을 바꾸고, 시야를 넓힌다
예술작품은 있는 그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관람객과의 호흡과 교류를 통해 그 의미가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보는 사람과 작품은 어떻게 이어질까. 롤랑 바르트가 사진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ktum)이라는 개념을 통해 볼 수 있다. 스투디움은 작품을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태도를 말한다. 푼크툼은 주관적인 경험이나 기억으로 인해 관람자가 작품으로부터 강렬한 자극을 받는 것을 말한다.
보통은 작품을 바라볼 때 두 가지 중에 하나의 방식을 취한다. 주관적인 경험이 없다면 혹은 주관적인 경험이 있어도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면 일반적으론 스투디움의 방식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같은 작가의 같은 작업은 항상 같은 느낌일까?
아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이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만난 드라고 트럼베타스(Drago Trumbetas)의 작업 <Gastarbeiter's life in Germany>를 통해 알게 됐다. 자그레브 출신의 트럼베타스*는(크로아티아어로 읽는 방법을 몰라 일단 한글로 표기*) 1966년 한창 일손이 필요하던 독일에 노동자로 왔다. 독일어로는 Gastarbeiter(가스트아르바이터) 직역하면 손님 노동자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주를 이뤘지만 독일과 비교적 가까운 나라 크로아티아나 스페인, 터키에서는 역할에 관계없이 상당한 수의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왔다.
그는 독일에 와 노동자로서 여러 공장과 직업을 거쳐가며 살아가며,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 대한 기사와 이미지를 수집했다. 어떻게 일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휴일을 보내는지 등을 사진으로 찍었고,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독일 내부의 시선과 평가를 신문 스크랩으로 모았다. 1985년, 근 20년 가까이 모은 신문 스크랩과 사진은 그의 손을 거쳐 70여 장의 그림이 됐다.
그의 작품은 2015년 자그레브 현대미술관의 소장전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는 기사 속 독일어를 모두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여행자로 유럽을 떠돌다가 3개월 정도 독일에 머무는 정도였기에 눈길이 오래가지 않았다. 레디 메이드 형식으로 작가 자신이 쓰던 방을 전시한 것에 흥미를 갖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2년 후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이 작품을 보고 결코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느낌이 왔다. 이방인으로 독일에 살아가며 피부로 느끼는 '다름' 혹은 '차이' 그리고 가끔은 '차별'을 통해 느낀 나의 감정은 그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1960년대는 더욱 심했을 시기, 이제는 일부 정당에서 주장해도 과격하다고 여길 발언들이 신문이나 잡지의 크게 실렸던 것을 보면 실제 삶은 더욱 고단했을 것이다.
Türken raus, Brauchen wir die Gastarbeiter? (터키인은 나가라,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한가?)라는 기사. Die Nigger Europas (흑인 유럽으로)처럼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인 헤드라인. 터키인과 독일인 사이에서의 싸움이 있었다는 대문짝만 한 기사들은 발길을 멈추게 하고,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공간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가의 집. 그것은 12제곱미터, 3평을 넘는 공간에서 살았던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2년 전 레디 메이드 중에 하나였던 그의 방은 그보다 조금 더 작은 나의 기숙사와 오버랩됐다. 때로는 좁고, 때로는 아늑한 그 공간에서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감정은 그의 것과 나의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예술, 예술행위 자체가 삶이라 한다. 하지만 교과서나 고전 작품만을 접해본 이들은 예술작품이라는 것들은 항상 공부로 이해 가능한 존재라고 말한다. 나는 두 가지 모두 옳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은 삶 자체라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공간의 것은 그에 관한 지식이 필요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그의 연장선에서 현대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지식을 통해 이해하거나, 누군가의 해석을 통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 이 작품과 나의 관계처럼 경험한 무언가를 통해 어떤 공부 없이도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바라보는 사람의 경험치는 시선을 깊이 있게, 시야를 넓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2년이라는 시간과 지나온 삶이 그의 작품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듯. 돌아보면 같은 미술관에서 소장전을 두 번이나 보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책을 곁에 두고 오래 읽듯, 가능하다면 그간 지나온 전시를 다시 밟아보고 싶다. 그 시간의 간극 속에 내가 조금 더 넓어지거나 깊어졌을 수도, 그래서 잊지 못할 작품을 만나 많은 것을 돌아볼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드라고 트럼베타스(Drago Trumbetas)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출신 예술가
2015년, 2017년 자그레브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Zagreb)에서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