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텍스트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by 알 덴테 도마도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한 달도 남지 않아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1층(독일식 0층) 입구에 위치

작품 형식 : 매거진 설치(2016-17)

작품명 / 작가 이름 : The Reading Room / Rasheed Araeen


카셀 도큐멘타의 첫 발을 내디딘 곳은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다. 이곳에서도 처음 눈길을 끈 작업은 Rasheed Araeen의 'The Reading Room'이다. 잡지를 만들었던 과거 덕분인지 유난히 잡지를 비롯한 여러 책에 애착을 갖고 있는데, 이를 저격한 작업이었다. 긴 테이블에 놓여있는 책들. 저널의 이름은 'Third Text'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 읽어볼 수 있도록 설치됐다.

KakaoTalk_Photo_2017-08-24-11-53-41.jpeg

영어로 쓰인 이 저널은 예술에 대한 텍스트로 가득하다. 그리고 여느 메이저 잡지에서는 일반적으로 실리지 않는 비서구권의 작품이나 미술 경향들이 긴 텍스트로 소개되고 있었다. 우연히 잡아든 한 권에서 한국의 단색화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Third Text'는 '제3세계의 관점으로 바라본 현대 예술과 문화(Third World Perspectives on Contemporary Art & Culture)'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듯. 주류에 속하는 서구권의 시선을 벗어난 저널이다. 이 작업의 작가인 Rasheed Araeen은 1987년 런던에서 'Third Text'를 창간했다. 그리고 1999년 부제는 '현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Critical Perspectives on Contemporary Art & Culture)'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2010년 에세이 'Art beyond Art'에서 언급된 '환경 미학(예술)(eco aesthetic)'을 통해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KakaoTalk_Photo_2017-08-24-11-50-44.jpeg

이 저널은 그 자체로 매력 있고, 존재감이 분명하다. 그의 시각과 관점은 어딘가 어색하지만 확고했다. 영어로 된 텍스트에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모든 글을 읽어볼 수는 없었지만 서구 사회를 기점으로 한 주류 밖 미술 사조조부터 최근의 크리티컬한 입장을 견지하던 비평문까지 흥미로운 저널임은 분명했다.

KakaoTalk_Photo_2017-08-24-11-52-32.jpeg

만국 공통어인 영어로 쓰인 글은 해당 국가의 미술 전문가가 쓴 것이 아니다. 때문에 해당 언어로 접하는 것만큼 방대한 양의 정보를 기반으로 하진 않았지만 글은 대체로 객관적으로 서술되었다. 책들은 도큐멘타에서도 핵심 전시관인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에 위치해있다. 도큐멘타를 찾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이곳. 제3세계의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목소리는 잠잠히 방문자의 뒤적거림을 기다리고 있다.

KakaoTalk_Photo_2017-08-24-11-52-54.jpeg

책이 설치된 곳 벽면에는 그의 이미지 작업이 걸려 있었다. 지극히 추상적인 것과 다분히 설명적인 것은 한 자리에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를 지시하는지, 서로를 설명하는지 그 관계가 불분명했다. 어쩌면 잡지가 놓인 카페의 배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홈페이지 작가 소개를 통해 그가 아테네에서 '생각을 위한 음식: 변화를 위한 생각(Food for Thought: Thought for Change)'이라는 관객 참여 설치 작업을 진행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The Reading Room'에서의 배경처럼 이 설치 작업에도 비슷한 이미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진행하는 관객 참여형, 설치 작업 배경에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고, 어떤 삶도 살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것은 작가의 신념을 표현하는 저널이, 사람들의 소통을 원하는 공간이다. 의미적 간극이 있지만 이 또한 그만의 예술관일 것이라 생각한다. 삶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도, 전혀 알 수 없는 이미지로 바꾸는 것도 그에겐 모두 예술 행위인 것이다.


이 작업은 사실 개인적으로 큰 울림을 줬다. 매거진을 만들었고, 온라인으로나마 연재하고 있으며, 언제든 호시탐탐 다시 매거진을 만들고자 하는 내게 그가 걸어온 길과 신념은 한 권의 정보가 아니라 한 권의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불특정 다수의 선호를 따르지 않고, 이미지로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을 글로, 책으로 담아내는 것. 그때가 되면 나의 매거진도, 나의 글도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 되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