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한 달도 남지 않아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1층(독일식 0층) 입구에 위치
작품 형식 : 설치, 사진
작품명 / 작가 이름 : Pile o’Sápmi / Maret Anne Sara
사람의 정체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법과 질서가 잡힌 현대 사회에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자란 나는 그것을 되짚어 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나의 정체성은 유럽에 오기 전까지 특별히 간섭받은 적이 없으니까. 간접 경험이라면 역사를 통한 것뿐이다. 일제에 대항해 자신의 머리를 고수하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그들에게 머리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목숨과 맞바꾸는 것도 불사했을 것이다.
빽빽한 순록 머리로 만든 커튼. 사라의 작업은 북유럽 내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Sami 족이 정체성 수호를 위해 정부에 맞서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들의 정체성은 순록에서 시작한다. 순록은 북쪽 Sami 족을 이루는 중심 요소다. 수입원이자 식문화 그리고 Sami 족 문화의 기반이기 때문. 하지만 핀란드와 노르웨이는 법으로 순록 사냥과 관련 행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순록 사냥꾼의 수는 15퍼센트까지 줄었다고 한다. 삶과 문화를 빼앗기다 못해 강제 파산 수준에 가까워진 Sami 족은 역시 법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작가 Maret Anne Sara 역시 순록 사냥을 하는 Sami 족으로 태어났다. 그는 Sami 족 내의 신세대 예술가에 속하며 그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순록 보호법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는 Sami 족을 대변해 법적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은 그의 형제였다. 작가는 그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예술을 택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대항을 시도했을까. 빼곡히 늘어진 순록의 머리를 보고 있자니 그런 의문이 들었다. 동물의 해골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작업은 2016년 2월 1일 노르웨이 Sapmi에 있는 도시 Tana 핀란드 지방법원 앞에는 200개의 순록 머리로 쌓인 피라미드에서 시작한다. 그날은 작가의 형제 Jovsset Ante Sara가 노르웨이 정부를 고소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법원 앞에 작가를 비롯한 주민들이 합심해 노르웨이 정부에 의해 학살된 순록의 머리를 항의의 의미로 쌓은 것이다.
그의 작업은 서부 캐나다에 살아가는 Cree 족의 풍습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그들은 동물의 영혼이 이 땅에 이어지는 것을 위해 물소의 뼈를 쌓는다고 한다. 이 행위로 오늘날 서부 캐나다에서의 그들이 존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의 작업은 북아메리카에서 자행한 잔인한 식민 역사를 비난하는 역할을 한다. 잔학하게 학살된 물소의 뼈를 쌓아 놓은 사진은 삶의 터전에서 추방되고, 특별법에 의해 규정된 그들의 모습을 비춘다. 또한 학살된 물소의 뼈가 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는 사실까지.
그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내러티브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먼저 우리의 코와 눈으로 살육된 순록 머리가 거칠게 부패하는 과정을 기억하게 한다. 다음으로 순록 해골 가운데에 있는 총구멍은 죽은 동물의 모든 부위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소수 민족을 향한 존중이 부족한 식민적 죽음의 정부를 설명한다.
그의 작업에서 순록은 소수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자행한 일을 알리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법을 내세운 정부와 싸우는 Sami 족은 순록 머리로 만든 깃발과 같은 것으로 공식 깃발을 삼았다. 그리고 현재 Sami 족의 승리로 판결이 났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이에 항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 그 가운데 많은 의미를 담은 순록의 머리가 있다.
소수 민족을 억압하는 법, 정부와 싸우는 사람들. 그들의 행위는 사진과 설치, 문서 등으로 치열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을 독일의 한 미술관에서 너무나도 점잖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는 사실 나의 정체성에 의심을 둘 일이 없던 사람이다. 민족과 나라라는 정체성이 나에겐 그들보다 조금 헐렁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 빼앗겨 본 적이, 억압당한 적이 없어서 알 수 없는 것일까. 이들에겐 순록, 누군가에겐 물소가 정체성의 근간이라면 한국인인 나에게 정체성의 근간은 무엇일까.
자신들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낯설다. 문득 죽은 순록의 머리들은 동물 권익이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보이기도 했다. 간접 경험과 글, 예술로 이해한 그들의 열정이 마음까지 닿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나를 이루는 정체성의 근간 인지도 모르는 내가 그들의 투쟁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그의 작업은 나에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공동체라는 소속감을 찾고자 하면서도, 그 안에서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는 도시 속 현대인인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