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이 된 고전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by 알 덴테 도마도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한 달도 남지 않아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1층(독일식 0층)에 위치

작품 형식 : 커튼 설치

작품명 / 작가 이름 : Telón de la móvil y cambiante naturaleza / BEATRIZ GONZÁLEZ


미술관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아트숍이다.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해도 방문하는 그곳. 그 이유는 여러 작품을 일상생활 용품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펜부터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프린트까지. 오리지널은 엄두도 못 내는 현대인들이 작품을 가까이 두고 접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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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베아트리츠 골잘레스(Beatriz Gonzalez)는 이 같은 복제된 작품을 활용한 작업을 했다. 1964년 그의 첫 전시에서 제3세계로 수출되던 저렴한 예술 복제품을 작업으로 내걸었다. 그곳에서는 베르메르부터 피카소까지 다양한 작품이 커튼으로 전시돼 있었다. 커튼에 대한 아이디어는 콜롬비아의 한 도시 보고타(Bogota) 역사적 중심지 Jimenez Avenue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창문에 놓인 Salvat라는 잡지의 표지에는 마네의 <Le Dejeuner sur l'herbe>가 있었는데 먼지와 햇빛으로 빛이 바래져 있었다고 한다. 커튼이나 서커스 텐트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진 후 빛이 바랜 것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일련의 그림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움직이고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51gbaV-qVZL._AC_US218_.jpg Salvat 잡지 표지

그의 작업은 팝아트와 비슷한 모습이 많다.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유명 작품을 소재로 삼았으며, 일상에 밀접하며 대량 생산되고 있는 것 중 하나인 커튼을 그 재료로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업 방식이 팝아트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점이 있다. 그는 소비주의의 어디서나 존재하는 상황을 눈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저개발 국가에서의 기호학적인 의미 부여에 대한 배경을 묻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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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을 처음 봤을 때, 원본의 그림이 바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바라보면 아주 단순한 색과 선으로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그림이 그려진 커튼이 제3세계로 수출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유명 작품을 생활 가까이에 두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까. 아니면 유명 작품이 소비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명성을 소비하기 위함일까. 닮았지만 비슷하지 않은 이 복제품을 보고 원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할까.


마그리트 작품의 포스터가 붙은 나의 거실을 보며, 그것과 이것은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맥락이 제거된 채 일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복제품. 불안정한 습도에 뒤틀리고, 엉성한 테이프가 힘을 잃어 몇 번씩 떨어지고, 햇빛에 종이가 바래지면 작가가 봤던 잡지의 표지처럼 원본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 포스터를 여전히 원본의 모사로 여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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