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한 달도 남지 않아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1층(독일식 0층)에 위치
작품 형식 : 영상 설치
작품명 / 작가 이름 : Atlas Fractured / Theo Eshetu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 1층에서 가장 넓은 면을 차지했던 영상 설치 작업이 있다. 영상 작업의 경우 오래 보기 어렵다. 여러 갤러리를 돌아야 하는 시간상 문제도 있지만 주변의 다른 영상이나 사람들 때문에 집중도가 금방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 Theo Eshetu의 영상 작업은 꽤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있게 했다. 독특함과 어렵지 않게 읽히는 내용, 특유의 위트 덕분이다.
벽면에는 천 재질의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각각 AMERIKEN(아메리카), ELA OZEA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오세아니아를 지칭하지 않을까. 온라인에선 아틀라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들로 설명되어 있었다.), AFRIKA(아프리카), ASIEN(아시아), EUROPA(유럽)가 적혀있고, 그 위에 서로 다른 마스크가 있었다. 이 포스터는 배경의 역할을 하며, 그 위에 다른 영상이 움직이고 있었다. 영상도 2개의 레이어가 겹쳐진 듯한 느낌이었다. 멈취진 가면 위에 움직이는 사람의 영상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사운드와 함께 재생되는 영상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마스크, 조각품이 실제 사람의 영상과 다양한 모습으로 덧씌워진다.
성모 마리아 조각상의 눈이 깜빡이는 영상을 보자마자 시선을 빼앗겼다. 박물관에서 눈을 깜빡이는 성모 마리아상을 봤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영상 레이어가 겹쳐지는 방식은 오묘하면서도 재미있다. 안경을 쓴 것 같은 조각상, 손으로 가면을 가리는 듯한 행동. 박물관에서 시공간의 격차를 느끼며, 숭고하게 또는 엄숙하게 대했던 미술품이 마치 만질 수 있는 무엇처럼 느껴졌다. 배경 포스터는 영상의 밝기 때문에 인지되는 순간이 짧지만 의미와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영상에는 다양한 인종이 등장한다. 아마도 배경에 그려진 그 5개의 대륙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두 영상은 어떤 특별한 규칙으로 레이어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시아 사람과 아시아 미술품이라는 정형화된 매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품과 인종은 시공간, 선입견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 든다.
배경이 된 포스터는 독일 베를린 달렘(Berlin-Dahlem)에 위치한 민족학 박물관에 걸려있던 배너다. 당시 8번째 베를린 비엔날레를 준비하던 박물관은 배너를 떼어내는 작업 당시 영상 촬영을 그에게 맡겼다. 이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논란이 됐던 도시성(Stadtschloss) 재건축 마무리 이후 역사적 중심지 베를린에 옮겨진 것이다. a민주주의 시대에 동독의 왕궁은 성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달렘의 소장품은 과거 독일의 식민지 정책과 연관돼 있다. 이는 제국주의적 건축 외관을 통해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보통 이러한 대형 천막형 배너를 떼어낼 때는 수거하기 쉽게 조각으로 자른다고 한다. 그는 잘린 배너를 치우기 전에 이 조각을 얻었다. 당시에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배너를 살렸고, 도큐멘타에서 커다란 형태 그대로를 재현하고, 그 위에 새로운 영상을 더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 세계 전반을 언급할 때 아틀라스라고 한다. 그는 아틀라스 위에 있는 작은 균열의 틈 사이로 서로 다른 영상을 겹쳤다. 이 틈 사이에서 영상들은 나라와 인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심각하거나 비장하지 않다. 도리어 유머가 돋보인다. 덕분에 그의 작품 제목처럼 적어도 이 배너 위에서는 공고할 것만 같던 아틀라스 제국이 분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넋을 놓고 관람하느라 제대로 된 영상 촬영을 하지 못했다. 더 많은 이미지가 궁금하다면 유투브에서 더 많은 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