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5년 만에 열린 축제는 이제 끝나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1층(독일식 0층)에 위치
작품 형식 : 사진
작품명 / 작가 이름 : Photographs / Algirdas Seskus
전쟁 전후를 겪은 세대, 냉전을 지내온 세대. 그들의 시선은 이미지로 익숙하다. 산업화가 한창 진행돼 풍요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의 세대는 그들의 시선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저널 이미지로 접한 참혹한 과거 다른 편에는 어떻게든 그 시기를 적응해온 누군가가 있다. 자연의 한 부분처럼 살아온 사람들. 작가 Algirdas Seskus는 그 다른 편에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에는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굵직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사이사이에 지나쳐도 모를 사진이 있었다. 그의 작업 'Photographs'다. 커다란 기둥의 단면 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흑백 사진들. 아예 눈치를 채지 못했다면 모를까 한번 알아챈 이상 놓치고 싶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의 흑백 사진은 전반적으로 조명이 어두운 전시장에서 제대로 보기는 어려웠다. 작고 어두워 촬영도 어려웠던 작품들. 아무리 여러 장을 쳐다보고 있어도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람 이후 도큐멘타 공식 서적 데이 북(Day Book)을 통해 알게 된 정보들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1945년 소련의 지배가 한창이던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공산주의자로 1936년부터 공식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덕분에 비교적 평탄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리투아니아의 딱 하나 있는 방송국의 카메라맨 면접을 보기 위해선 10장의 사진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 면접을 위해 카메라를 사고, 사진을 배웠다고 한다.
도큐멘타에서 전시된 사진들은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방송국 카메라맨으로 활동하며 촬영한 사진들이다. 촬영 카메라 뒤에서 촬영하기도 했고, 특정한 장소를 찾아가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Photographs' 는 총 스물여덟 장으로 구성됐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6장을 걸었다. 그는 어떤 결과를 유발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직접 상황에 뛰어드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건을 딱 잘라 보여주거나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피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마치 파편을 보는 듯하다. 이미지 속에는 억압된 시대를 인식할 수 없다. 사진은 그가 접한 모든 것의 파편인 것이다.
혼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는 혼잡함 속 열망, 노력을 담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기 마련이다. 실제로 그들의 역할은 막중하다. 다른 한편에는 시대와 관계없이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무언가를 파인더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시대의 기록 대신 순간의 기록을 택한 것이다. 그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묵직한 추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카메라를 든 사람으로, 민주주의의 후퇴와 탈환을 경험하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그 무게 말이다.
그의 이미지는 역사의 맥락에서 그리고 사진의 설명적인 성격의 맥락에서도 벗어났다. 그래서 사진들은 '사진들'이라는 동어반복적인 이름을 달고 파편이 됐다. 그리고 그 파편들은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 여기저기에 늘어져 있다. 그의 사진들은 순간의 이미지 조각이다. 이미지는 그의 작업 방식과 성향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뿐. 중요한 것은 증거가 가리키는 그의 작업 방식과 성향이지 않을까.
작가 홈페이지 http://seskus.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