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5년 만에 열린 축제는 이제 끝나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1층(독일식 0층)에 위치
작품 형식 : 사진, 그림, 아카이브, 설치
작품명 / 작가 이름 : The Diasters of War / Daniel García Andújar
인터넷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 강력한 힘은 '정보'에서 나온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해 못할 말은 아니었으나 특별히 와 닿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내일이 불투명한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주변에서 '~카더라' 소식을 듣다 보면 좋은 정보를 가진 사람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해도 훨씬 앞서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인터넷 바다를 헤엄쳐도 누군가는 필요한 정보를 찾아 빠르게 길을 나서고, 누군간 허우적거리며 더욱 길을 헤맨다.
아카이브는 인간의 역사 그리고 기술의 발달에 없어서는 안 될 개념이다. 하물며 제대로 된 문자가 있기 전부터 귀중한 지식을 그림으로 그려 후세에 전달하기도 하지 않았나. 도서관은 방대한 정보를 저장한 오프라인 아카이브가 아닌가. 정보화 시대 이전에도 정보는 아카이빙 되었고, 그 중요성 역시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삶과 아주 가까운 아카이브는 예술의 한 방식으로까지 흘러들어 갔다.
스페인 출신의 작가 Daniel García Andújar는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넷 아트의 길로 접어든다. 그의 대표 프로젝트 Street Access Machine은 거리 구걸의 풍경을 바꿨다.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사용하지만 노숙인들은 여전히 현금을 구걸하는 시대다. 그래서 그는 노숙인들에게 모바일 신용카드 스캐너를 나눠줬다. 카셀 도큐멘타에 전시됐던 그의 작품은 이 프로젝트처럼 활동적이진 않다.
도큐멘타에서 소개한 그의 작업 The Diasters of War는 아카이브 형식을 사용했다. 아카이브 작업은 종종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의 작품은 눈을 사로잡는 흐름이 있다. 내가 정치적, 역사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성향 탓이겠지만. 그의 이미지들은 지루하지 않은 적당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어쩌면 설명 없이도 간파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갤러리 한 벽면을 가득 차지하는 이미지는 전쟁 중 약탈한 미술품을 옮기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들로 시작한다. 그리스의 사진과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을 거쳐 전쟁을 묘사하는 그림과 전투기의 모형도, 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시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후 독재 및 공산주의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이어진다. 어떤 건물의 설계도와 화폐, 전쟁에 대한 이미지 등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김일성 수령님 만세'라는 문구다. 그 위에 영어 문구 'Liberty or Death(자유 또는 죽음)'가 상황을 잘 설명한다.
그의 아카이브는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가는 시간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이어진 이미지에서는 타임지에 실린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액자 틀에 맞게 가로로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 즈음엔 몇 년 전부터 한참 문제가 되었던 난민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나왔는데, 기존 아카이브와 다르게 사진이나 그림 대신 설계도에 가까운 이미지가 있었다. 사진이나 손으로 그린 그림에서 촘촘한 선으로 이어진 흐름 역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대 벽면에는 18개의 이미지가 나열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7~8개 정도의 이미지를 서로 다르게 조합한 것이다. 목을 맨 사람, 교수형에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사람, 경찰 둘이 한 사람을 체포하는 듯한 모습, 개가 앉은 것과 같은 모습(확실하지 않다), 매를 든 사람과 그 맞은편에서 팔을 벌린 사람, 두 사람의 목줄을 잡고 있는 사람, 가만히 선 사람.
주가 되는 이미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각 이미지의 스토리텔링은 다르게 느껴진다. 강렬한 의미를 품고 있는 이미지들은 서로 충돌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설명도 없었지만 역사적, 정치적 맥락으로 읽힌다.
그 외에 퍼즐, 설치 영상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론 이미지보다 강렬함이 덜했다. 도큐멘타에 전시된 그의 작품은 그리스, 전쟁, 디지털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이 북(Day book)에 따르면 작품 안에서 드러나는 공동체(Community), 공산주의(Communism), 의회(Assembly)에 대한 아이디어는 정치적 유토피아가 아닌 교육 방법으로서, 하드웨어에 접근하고 아카이브의 속성과 인식론에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서 이해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가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정치적 속성들은 유토피아를 제시하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세계에서 아카이브가 하나의 교육 방법이 될 수 있고,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접근하도록 도와주거나, 아카이브라는 속성 자체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1967년부터 1974년의 그리스 군부독재 정권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 프로젝트나 파시스트 문법의 그림-텍스트-어휘를 모은 LTI - Lingua Tertii Imperii(2016) 등에서 이런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넷 아트라는 장르를 활용하는 그의 목표는 뚜렷하다. 지배적 운영체제의 약점을 밝히고, 해킹하고 비판적으로 사용하며,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언어 표준화에 저항하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위해선 코드를 해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도큐멘타의 주제는 '그리스에서 배우기'였다. 그리스를 설명하는 많은 단어 중에서 '민주주의'는 뗄 수 없는 수식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표방한 민주주의가 정말 민주화된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며, 우리 체계가 가진 약한 점을 파고든다. 그의 아카이브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가 명확하다. 힘의 저울 위에 선 아카이브는 가벼운 쪽에 서서 균형을 맞추며. 국가라는 지배적인 체계의 코드를 해독해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제공할 뿐 해독된 코드를 읽고 행동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http://www.danielandujar.org/portfo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