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된 다리에 대한 6개의 영상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by 알 덴테 도마도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5년 만에 열린 축제는 이제 끝나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4층(독일식 3층)에 위치

작품 형식 : 동영상

작품명 / 작가 이름 : Realism / Artur Żmijewski


리얼리즘이라는 미술사조는 객관적 현실을 가능한 현실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창작 방식, 태도를 말한다. 소재를 기준으로 하면 신화, 외계처럼 현실 세계와 극명히 다른 이런 소재는 리얼리즘이 아니다. 리얼리즘의 본질을 기준으로 두면 초현실적인 소재가 현실의 사실적인 면을 묘사하기 위함이라면 리얼리즘이 될 수 있다.

리얼리즘의 실현을 위해선 전형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빠르고 쉬운 인지를 위해서다. 예를 들어 역대 대통령의 전형적인 특징은 콩트나 개그의 소재가 될 때 강렬하게 작용한다. 엥겔스는 이에 대해 "리얼리즘이란 세부적인 묘사의 진실성 이외에 전형적인 환경에 있어서 전형적인 성격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가 Artur Żmijewski의 작품 '리얼리즘'에서 소재는 절단된 다리다. 넓은 공간에 설치된 6개의 영상 속에는 절단된 다리가 움직이는 것, 절단된 다리로 걷거나 뛰는 것, 의족을 장착하는 것, 의족으로 걷거나 뛰는 것, 운동하는 모습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절단된 다리 사용설명서처럼 보일 정도로 영상들은 어떤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한참을 보고 있자면 그 영상들이 '보여주는 것' 외에 어떤 목적도 지니지 않아 사용설명서와도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애를 주제로 한 작품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누군가의 절단된 신체의 일부를 채워 보여주는 작품(One Eye for One Eye)(1998)를 만들기도 했으며, 헌팅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산만한 움직임을 담은 영상(2004)과 간병인을 통해서만 올려지고 휠체어로 어렵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영상(2001)으로 남겼다. 지난 도큐멘타 12에 전시된 영상 작업 'Singing Lesson 2(2003)'에서는 바흐의 웅장한 칸타타를 부르는 청각 장애인 합창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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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장애인을 소재로 만든 영화는 사회 비판의 표현이다. 신체장애는 그의 모국 폴란드에서 독일보다 훨씬 더 금기시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소위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 부끄러움은 사회적 통제 수단이 된다. 그는 사회에서 소수자를 배제하는 표현으로써 장애인과 그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가 작성한 선언문 'Applied Social Arts'에서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예술관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그는 쉽게 접하기 어려울 정도의 낯섦, 대중과 괴리된 현실, 자기만족에 빠진 예술, 예술이 지닌 건망증과 허비된 가능성을 비판했다. 그는 예술이 사회적인 영향을 가졌으며, 지식을 창조하고, 변화를 야기할 수 있기에 예술이 정치와 과학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술의 '바이러스 이론'을 주장한다. 이 이론에서 사회 시스템 각각은 하나의 장기이고, 예술은 바이러스다. 예술은 사회 시스템을 감염시키듯 건설적인 징후를 통해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술은 시스템을 적합한 하나의 시작 지점에서 원하는 최종 지점으로 이끌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리얼리즘이라는 방식으로 그는 사회 속에 들어가고자 한다. 그의 목적과 다르게 그의 작업이 내게는 현실에서 동 떨어진 느낌이다. '리얼리즘'에서 그의 카메라는 절단된 다리를 집요하게 쫒고 있다. 신체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주인공인 것처럼. 소재도 날 것이지만, 소재를 말하는 방식도 객관적이다. 제목을 리얼리즘으로 둠으로써 작품의 목적 자체가 '리얼리즘'이 된 것처럼 읽힌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이즘'을 넘어 리얼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리얼함'은 마치 실험실 속 재료들처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날 것이다. 주체가 된 장애인이나 절단된 다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맥락과 목적이 제거된 채 걷거나 뛰거나 계단을 오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영상 속에서는 말도 없이, 시선도 나누지 않은 채 누군가는 부족한 타인의 다리가 되어 함께 계단을 오르고, 절단된 다리를 계속해서 접고 편다. 나체인 상태로 나타나 텅 빈 방을 걷는 모습은 더욱더 낯설다. 어쩌면 이 작업에 있어 그의 현실은 장애인도, 장애인의 움직임도 아닌 그들의 모습 자체가 낯설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나의 시선이 아닐까.



<Realism>

https://www.youtube.com/watch?v=cGMgUCyiHg0


<One Eye for One Eye>

https://vimeo.com/53457235


<Singing Lesson 1> (Singing Lesson 2를 찾을 수 없어 대체)

https://www.youtube.com/watch?v=mw-M0IG8HRo


참고 자료

노동자의 책 http://www.laborsbook.org/dic/view.php?dic_part=dic05&idx=1604

Kassel Documenta 14 Daybook http://www.documenta14.de/en/artists/1046/artur-zmijewski

Interview http://www.arterritory.com/en/texts/interviews/6830-blind_spots_and_deaf_zones_of_polish_artist_artur_mijewski

http://www.art-magazin.de/kunst/6319-rtkl-documenta-14-artur-zmijewski-posieren-mit-handic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