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5년 만에 열린 축제는 이제 끝나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노이에 노이에 갤러리(Neue Neue Gallery)
위치 : 4층(독일식 3층)에 위치
작품 형식 : 편지 설치
작품명 / 작가 이름 : Skeletal Buddha / Moyra Davey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얼마나 뚜렷할까. 이제는 일상이 곧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경계가 흐려진 것 같다. 일상 한가운데에서 벌이는 퍼포먼스, 일상 속에서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활에 밀접한 공공미술품. 찾지 않아도 예술은 찾아가려고 한다. 누군가의 삶에 침투하려는 적극적인 예술 행위도 있는 반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행위' 자체를 작업의 방식으로 삼는 예술 행위도 있다. 이 중 하나가 '메일 아트'다. 메일 아트는 편지, 우편을 활용한 작품을 말한다. 전후 작가들에게서 시작한 메일 아트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도큐멘타에서도 작가 Moyra Davey의 메일 아트 'Skeletal Buddha'가 전시되었다. 그 역시 일상에서 친구들과 포스터나 그림을 주고받다가 영감을 얻어 메일 아트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메일 아트에 대한 개념은 유명 작가들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관람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노이에 노이에 4층 벽 한 공간을 길게 차지하고 있는 이미지는 멀리서 보아도 알파벳이 크게 보였다.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흘러가는 와중에 툭툭 튀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알파벳 배경에도 다른 이미지가 깔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알파벳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일리아스와 19세기 독일의 서사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배경의 이미지는 사진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과 엘리스 B. 토블라스가 주고받았던 편지라고 한다. 작가는 인생 첫 여행지였던 아테네와 칼쿠타(Kalkutta)(카메론이 태어난 도시)를 사진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조각난 언어와 편지 비슷한 도큐멘트의 결합은 사진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사진가이자 글 쓰는 작가로서의 예술가의 작업을 바로 연결해 보여준다. 이러한 조합은 쓰는 것과 읽는 것, 보내는 것과 받는 것 사이의 상호 교환적인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이미지였지만 글자 하나, 이미지 하나에 신경을 쓴 모습은 여느 작업들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편지에 붙은 초록색 혹은 형광 분홍색 테이프는 서로 다른 이미지에서도 일관성을 준다. 이미지와 글자를 사진으로 편집해 인쇄하고, 이를 편지로 보내는 방식은 글과 사진의 조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가 여행한 도시와 옛 사진가들이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에서 따온 알파벳이 제법 억지스럽게 결합되어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 이번 도큐멘타의 공동 개최 도시가 아테네가 아니었다면 그는 다른 나라의 여행 경험과 그곳의 대표 작가가 나눈 편지, 그 나라의 고대 서사시를 사용했을까. 또 글을 쓰는 작가와 사진을 찍는 작가의 정체성을 모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는 너무나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론 커다란 알파벳을 배치하는 것은 시각적으로 흐름을 보여주기엔 좋았지만 이목을 끄는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조합이 제법 억지스럽긴 해도 문자를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는 방식과 이미지를 편지라는 텍스트 매체 기반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나 역시 문자를 이미지화하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기에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계점이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작가도 아마 비슷한 지점에서 문제점을 느끼지 않았을까. 작품 너머에서 편지를 접고 있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