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나일 수도 있어

한 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

by 알 덴테 도마도

'한걸음 느린 카셀 도큐멘타 14'라는 소제목으로 카셀에서 만난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카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하나 둘 정리해 길거나 짧은 메모를 남길 것이다. 5년 만에 열린 축제는 이제 끝나 누군가의 가이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건 상 방문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잠시 읽을만한 짧은 메모가 되길 바란다.


미술관 : 도큐멘타 홀(Documenta Halle)

위치 : 0층에 위치

작품 형식 : 회화

작품명 / 작가 이름 : KOENTTEICHSEIN / Miriam Cahn


'루시퍼 이펙트'라는 유명한 심리학 입문서가 있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실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다. 일반 학생을 모집해 가짜 감옥 안에서 각각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시켰다고 한다. 학생들은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은 죄수 역할의 학생들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하기도 했다. 실험의 결과는 '인간의 악한 행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됐다. 환경과 상황에 의해 악한 행위가 드러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누구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위스 바젤 출신의 작가 미리암 (Miriam Cahn)은 회화 작업 'KOENTTEICHSEIN'을 통해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독일어로 'könnte ich sein'은 '나일 수도 있어'라는 의미를 지닌 문장이다. 작업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다. 인터뷰에서 그는 "Es ist wörtlich zu nehmen, eskönnte mich ja auch treffen, dass ich flüchten muss, zum Beispiel. Es ich könnte mich auch treffen, dass ich aggressiv werde oder jemanden haue oder sowas." [1]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는 피난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폭력적이거나 누군가를 해치거나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말했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고 아픔과 상처를 겪는 이러한 상황에 몰입해 그림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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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도큐멘타 14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82년 도큐멘타 7에 처음 초대됐다고 하는데 실제로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예정과 달리 다른 작가와 한 공간에서 작품을 걸었어야 했기에 그는 전시 오픈 전에 작품을 철수했다고 한다. [2] 어쩌면 고집스러워 보일 성격이지만 실제로 방 하나에 배치된 작품을 보면 그가 지켜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작품으로 채워진 방에 들어서면 배경을 메운 원색이 강렬함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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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개의 이미지를 제외하면 모든 그림에 인물이 있는데, 도둑처럼 보이는 사람과, 히잡을 쓴 것 같은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나체 상태다. 벌거벗은 사람들의 신체 윤곽은 뚜렷하지 않다. 이러한 배경에 묻혀버릴 듯한 뭉툭함과 인물의 사회적 상태를 알 수 없는 나체 상태가 결합돼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대신 인간 일반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얼굴의 이목구비는 다른 색을 사용해서라도 뚜렷하게 만들었다. 특히 눈이 강조된 인물이 많은데, 강조된 이목구비는 감정을 드러내며 자칫 표정 없는 군중이 될 뻔한 것을 막아준다. 전반적으로 뚜렷한 선이 없는 이미지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콘트라스트는 큰 기교 없이도 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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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강렬한 원색이 특징인데 언뜻 마크 로스코의 추상 회화가 떠오른다. 이러한 추상 회화 같은 배경은 설명적인 공간을 배제하고, 감정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전시된 이미지 중 두 작품은 간단한 선으로 공간감을 준 배경 위에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두 명 이상의 인물이 있을 경우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주기 위해, 간단한 상황을 부여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둔 것 같았다. 또한 두 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할 경우 손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으로 인물 사이의 유대감을 나타내기도, 가까움을 무기로 한 또 다른 폭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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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품 사이사이에 두 개의 사진 이미지가 눈에 띄었는데, 이것이 정말 사진 이미지인지, 극사실주의 이미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뭉툭한 이미지들 사이에 눈에 띄는 선명함이었다는 것이다. 젊은 서양 남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이미지와 두 명의 어린 여성 사이에 그려진 뭉툭한 인물. 회화의 모호성 중간에 불쑥 삽입된 사진은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임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현실성을 잃지 않기 위한 마지노선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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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 바로 이전의 작업들이 '무슬림 사회에서의 여성의 인권'에 대한 내용이어서 그랬는지, 희생자와 가해자의 대립이 강렬한 작가의 작품에서 무의식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각각 가해자와 희생자로서 그려지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특정한 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아이를 매몰차게 잡아끄는 여성, 상처 입고 누운 남성 등. 작가 자신이 상황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과 달리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된 총과 붉은 식물. 이런 이미지에서 위협의 현실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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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인물들과 원색으로 둘러싸인 그 방에서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것도, 특정 인물의 비극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적인 묘사로 놀란 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특정하지 않았지만, 어떤 것도 소리 내어 말하고 있지 않지만 들리는 비극의 상황들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 번, 세 번 겹겹이 칠했을 그 붉은색 배경의 무거움을 끌어안고 있는 듯했다. "탄압받는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들은 이제 지겨워"라고 했던 독일의 젊은 예술가의 말이 맴돌았다. 우리가 이곳이 아닌 저곳에 태어났다면 가해자 혹은 희생자. 둘 중의 하나를 택하지 않고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일 수도 있어'. 이 말은 예민한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작가 미리암 칸이 우리에게 주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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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ladimir Balzer, <Miriam Cahn auf der documenta : Die Ästhetik der Identifikation>, Deutschland Funk Kultur 08. Juni 2017

[2] Till Briegleb, <Nackter Apostelkreis>, Süddeutsche Zeitung Nr. 68, 22. März 2016, 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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