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에도 속하지 않는 애매한 "여직원"이라는 위치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것은 바람이 차가워지던 10월 중순 쯤이었다. 만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20대초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리저리 면접만 탈락하길 수차례... 그때에도 취업시장 뚫기가 만만치 않았던 터라 어디든 되면 바로 충성을 다하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햇병아리 열정가득한 신입 취업준비생. 초조해하던 차에 기대도 별로 하지 않았던 합격의 기쁨을 건네준 한 회사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계열사였다. 눈 높게 대기업만 선호하며 취업하길 바란것도 아닌데 이런행운이 오다니, 부모님이 기뻐하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친구들도 모두 소식을 알고 기뻐하고 부러워했다. 나는 알바 경험조차도 없이 꽤나 곱상하고 순수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터였다. 그래서 내가 너무 사회를 만만하게 봤나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어찌어찌 입사한 내 발앞에 펼쳐진 사회의 맛은...달콤함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쓰디쓰기만 했다. (즐거움도 물론 있었다. 아주 꽤 시간이 지나서...) 첫날 인사부 사람의 안내를 따라 영업팀에 배치되었다. 텅텅 비어서 컴퓨터도 아직 세팅되지 않은 내 자리는 인권이라곤 전혀 없었다. 뒤가 훤히 뚫려 있는 제일 문 앞 자리. 외부인이 유리문 앞에 서기만 해도 내 뒤통수와 pc가 훤히 보일 그런 자리였다. 그리고 앉은 순간부터 느껴지는 숨막히는 분위기와 고요함. 또래의 사람들과 서로 일에 대해 토론하며 사무실 안을 떠들썩하게 돌아다닐거라 생각했던 내 상상과는 달리 팀 사람들은 나와 적어도 기본 10살차이는 났다. (그곳이 유독 나잇대가 높긴했다.) 상상과 정반대의 모습에 처음에는 너무나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서른, 마흔은 훌쩍 다들 넘은 듯한 나이먹은 사람들은 신입에게 눈길한번 주지않은 채 세상 차가운 표정이다. 또 다들 얼마나 본인이 얼마나 바쁜지 어필이라도 하듯 무심하고 새침하게 노트북 자판만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입사 첫날 뿐만이 아니라 한동안은 그렇게 멘붕인 상태로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을 걸수도 없고, 말을 걸어주지도 않는 상태에서.
약 30명정도 되는 팀을 둘러봐도 생물학적인 여자는 딱 1명 있었다. 나와 같이 20대 초반. 평균 10살차이인 남자직원들과는 달리 여자직원은 또 어리디 어렸다. 내가 들어가니 총 2명이 되었다. 번듯하게 면접보고 남자들과 경쟁해서 들어온 이곳에서는 나의 역할은 상상외로 더욱 한정되어 있었다. 남직원들이 주된 업무를 처리하고 남은 뒷수습을 시키면 마무리 짓는 일, 그리고 갖은 귀찮은 잡무 등등 이었다. 신입은 잡무부터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시 그들은 나에게 일을 알려주고 키울 생각이 없어보였다.(나중에 신입 남자직원이 들어왔을때는 바로 영업실무를 시켜보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때는 사회생활이 처음이니 모든 회사가 다 이런줄 알았다. 경악스러웠다. 학교를 다니면서 똑같이 공부하고 경쟁하고 부모님은 공부를 해야 성공한다며 필사적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주셨다. 남녀 차별이란 그냥 초등학교때 남자가1번부터, 여자가 41번부터 시작되는 작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던 수준의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보수적인 남녀 차별이 이렇게 심할줄 몰랐던 것이다. 차 심부름, 각종 사무용품 배달은 기본이고 춥고 비오는날 우산이 없으니 우산과, 양말이 다 젖었으니 양말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갔다오기도 했다. 어느날 업무중에 팀장이 큰 목소리로 다른 회사의 누군가와 하는 통화가 귀에 들어왔다. "우리팀? 28명이야...그리고 여직원 둘 있긴 있고." 카운트 하지 않으려다가 뒤에 겨우 덧붙이는 여직원 둘. 팀원에 속하지 않는 여직원이라는 타이틀은 대체 어떤 정체성을 가졌을까.
팀에 경력직원을 뽑는다고 회의실에서 면접을 봐야하니 차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면접자들이 몇명 다른방에서 대기하고 회의실에는 인사부장을 비롯해 우리팀 사람들이 면접관으로 앉아있었다. 주스를 따라서 면접관들에게 한명씩 건네주고 나왔는데, 다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들어가서 보니 인사부장이 주스를 책상위에 쏟았다. 나는 주스를 놓을때 너무 앞에 대충 놓았나 싶은 생각에 괜시리 죄책감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얼른 티슈를 들고와 닦으면서 내 입에서 나왔던 말이다. 쏟은 사람은 다른사람인데 주스도 갖다주고, 치워도 주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나의 말에 그들은 아무도 대꾸하지않았다. 마치 남자화장실에 들어온 청소 아주머니가 투명인간처럼 바닥을 닦는다는 듯, 그저 서류를 훑어보며 바쁜 척 할 뿐이다.
사무실 창문을 누군가 활짝 열어놨었다. 점심을 먹고 한창 나른한 와중에 푸드득 거리는 소리와 심상치않은 분위기가 확 느껴졌다. 사무실 안에 비둘기가 난입한 것이다. 비둘기라면 평소 기겁을 하는 나는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자리에서 경악했다. 비둘기는 저 위에 캐비넷 위에 앉았다가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다시 또 요란스럽게 누군가의 파티션 위로 날아다녔다. 사무실이 아수라장이 된 건 물론이다. 나는 순간 말도안되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비둘기 좀 내보내라고 팀장이 명령할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땐 분위기가 그랬다. 탕비실의 집기를 그들이 깨뜨려도 나를 부르고, 잡상인이 불쑥 들어와서 영업을 할때도 나를 쳐다보았다. 알아서 내보내라는 듯이... 항상 남자들은 바쁘게 일에 집중해야하니 그런 일은 잡일 담당(여자)가 하라는 식이었다. 그 순간 내가 얄궂게 발휘한 기지는 사람들 없는 탕비실로 가서 그들 눈에 최대한 눈에 띄지않게 서 있는 것이었다. 아예 화장실로 가버리거나 난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말을 할 용기는 없었으므로.
사무실안의 작은 탕비실에는 종이컵과 각종 커피, 티백 등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믹스를 휘젓는 티스푼은 작은 유리머그잔에 담겨져 있었다. 티스푼은 다같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믹스를 휘젓고 머그잔에 다시 담궈놓으면 그 안의 물이 자주 갈색으로 물들곤 했다. 그것을 깨끗한 물론 다시 갈아놓는 것은 2,3초밖에 걸리지 않는 일이지만 아무도 하는 이는 없었다. 부장급의 남자가 탕비실로 들어가 커피를 타다가 그 머그잔을 쨍그랑 하고 떨어뜨렸다. 물론 그 소리를 나도 들었다.
“XX씨!”
유리가 깨졌나? 하고 궁금해하는 찰나에 그는 내이름을 불렀다. 내가 그의 부름에 들어가 얼떨떨하게 유리를 치우는 순간에도 그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기색으로 어이쿠 한마디 하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유리를 깬 사람은 본인인데 왜 남을 불러서 해결해주길 바란건지. 아직도 회사를 다니며 그렇게 행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시간이 지나서 사회를 겪어보며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과거는 모든 게 내가 자처해서, 호구라서 그랬다는 나의 자책이 더욱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여자들은 순종적이여야 하고, 분위기 메이커 여야하고 주어진 일에 수동적이지만 실수는 없이 해내야 했다. 그때 나에게 그런걸 바라는 사회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병신이라는 나의 검열이 나를 더욱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5년이 지나도 나는 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별로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러고 다시 5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이제 사회가 조금씩 변해왔다. 나는 그 직장을 퇴사했지만 이제 그곳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이후에 나는 몇몇 다른 회사를 거치게 되면서 내가 가진 소신을 조금씩 실천하였다. 부당한 것은 참지않고 건의하고 쓴소리도 낼 줄 안다. 상사 눈치만 보면서 참고 참는것만이 미덕이라고 하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성격도 조금 변했다. 사회가 변하기를 바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내가 최근 노동환경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믿음이 생긴 것이다. 변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가 변한다. 주 52시간, 미투운동, 워라밸의 가치… 아직도 나아갈 길은 멀겠지만 그래도 변화 속에 내가 조금은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