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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 Sarang Aug 29. 2019

결혼에 목매지 않자 인연을 만났다

앤디워홀이 내게 살짝 알려준 그의 Tip

 

내가 혼자되는 게 더 낫고, 자신의 문제를 내게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더 좋다는 결정을 내리는 바로 그 순간, 이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내 뒤를 쫓으면서 내가 듣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음 속에서 내가 고독한 사람이 되는 순간, <추종>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일이 내게 온 것이었다.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나는 이명제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앤디워홀의 철학 中



20대에 수많은 이성을 만났지만 결혼까지 이루어 지진 않았다. 결혼을 미친듯이 갈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애 이후 결혼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초조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선 “그래, 나도 적극적으로 해보자.” 라고 되뇌이며 내 자신에게 이유를 찾아보고 바꿔보려 부단히 시도했다. 하지만 내가 놓을 수 없는 조건들은 내가 경험한 남자들 만큼이나 꽤나 많이 쌓여있었다. 이만큼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상대도 이정도는 되야해, 외모가 이래선 싫어, 돈은 이정도는 있어야해 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눈은 한없이 높아져 있었다.



애쓰고 노력했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것


26살 때 만났던 A

같은 계열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연락처를 주고받게 되어 썸을 타게 되었다. 바른생활 사나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본인 자체도 그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다. 사귀면서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회사 주차장에 차를 가지러 갈 때 조차도 자기가 여자와 걸어가는 모습을 보일까봐 따로 들어가자고 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본인이 연예인 인줄 알았나 보다.) 늘상 내 자취방에 못 들어와서 안달이더니 받아들여주지 않자 냉큼 먼 곳으로 1박 여행계획을 짜왔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은 최악의 기억이 되었다. 그래도 바보 같이도 나는 그와 결혼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번듯한 직장에 좋은 학벌과 호감형 외모를 지닌 A를 놓치기가 싫었고 남들에게 보여주기에 아주 적절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리사이의 안좋은 일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더 중요했던 나였다. 적당한 때가 되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자긴 아직 결혼은 아직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싶다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낸지 얼마 후 우리는 깨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의 나의 베프 B

좋아한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소중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는 비밀도 없었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10대와 20대 초반을 죽고 못살며 같이 지냈지만 점차 난 회사생활에 바빠졌고 그 친구는 취업을 미루고 고시공부를 하였다. 그러다 실패를 거듭하자 포기하고 회사를 취직했다가 다시 고시로 돌아가는 등 방황을 하였다.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며 우울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급기야 내 연락을 받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친구가 그럴리가 없다 생각했다. 친구의 생사를 알기 위해 애를 쓰고 쓰다가 마지막으로 장문의 카톡으로 잘 지내냐는 안부를 건넸고 1은 사라졌지만 답장은 오지않았다. 그걸 마지막으로 허무하게 친구와 멀어졌다.


3년을 사귄 C

적당한 외모와 키, 최고의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직원, 나에게 목숨까지도 바칠 듯한 열정. 그와 불꽃같이 3년을 사귀었지만 그 사이에 많은 단점 때문에 많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헤어짐이 정답인 것 같은 때도 놓을 수가 없었다. 그가 결코 나랑 헤어지고는 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아집이기도 했다. 그토록 변하지 않길 바랬던 사랑은 3년이 지나곤 유효기간을 다했다.


단편적으로 3명만을 나열해보았지만 나는 그간 인생에서 많은 것을 애쓰며 살아왔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는 더욱. 내가 잡을수록, 미련을 놓지 못할수록, 아쉬워할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우연히 앤디워홀 전시회를 갔고 과하게 독특하지만 재밌는 사람이라는 흥미가 생겨 그의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나는 이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띵했다. 나는 늘 남들에게 잘해주고 노력했다. 내가 사랑받길 바랬고, 친구의 애정을 받길 바랬고, 좋은 학벌의 그와 결혼해서 내 부족한 능력과 잔고를 채워 주길 내심 바랬던 것이다. 직장생활에서는 상사의 이쁨을 받아서 나에게 이득이 돌아오길 바랬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모든 인간관계에서 내가 원해서 잘해주고 베풀었던 것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잘해줄수록 그들은 멀어져갔다. 떠나지 말라는 애인은 떠났고, 친구와는 허무하게 멀어졌으며, 직장상사는 내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내게서 무언갈 받는 순간 상대방은 순간의 고마움을 표현 했을 뿐, 내가 바라던 보상과 답변은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에게 잘해주기보다, 나에게 잘해주고 내실을 쌓는 것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이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다. 결국 나의 노력과 행동은 보상을 위한 것 이였다. 나의 불완전함을 남을 통해서 구원받길 바랬던 것이다. 그것을 남들도 아마도 느꼈을 것이다.


이후 남들에게 매달리고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멈추었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소개팅이라도 해볼래, 그러다 아무도 못 만나면 어쩌니, 곁에 아무도 남지 않으면 후회한다는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인연을 만나기 위해 노력은 하였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달랐다.



인연을 만나다.


인연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물론 이 사람이 나의 평생의 인연이라는 것을 확신할 순 없다. (흔히 말하는 관 두껑 닫히기전까지는 모르니까.) 그렇지만 내 인연은 내가 바라던 이상형의 모습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고 프로포즈를 했다. 그간 늘 원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과거에서 벗어나자 더욱 잘난 학벌에 고연봉, 끌리는 외모를 가진 이 사람이 찾아왔다. 정신없던 과거의 사랑과는 달리 내게 적당한 사랑을 주었고 나도 그에 맞는 단단한 내면을 내보였다. 그렇게 내 20대의 방황했던 이성 관계는 미련없이 정리가 되었다. 서점에서 보았던 수많은 이성관계에 대한 책과 글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옛날 사람의 한마디로 나의 인생이 바뀔 줄은 몰랐다. 사람이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순 없다는 것. 그 집착과 생각을 버리자 비로소 인간관계의 편안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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