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i Sarang Sep 10. 2019

예민한 친구와 무심한 나의 기막힌 조화


전화를 받지 않으면, 톡을 보내놓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것이 나의 연락 철칙(?) 이었다. 연인이든, 친구든, 부모님 이든 그랬다. 전화를 받지 못할 상황 이겠거니 하고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 그러나 이 모든것과 반대인 친구가 나타났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보통 학창시절친구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그 통념을 깨 준 친구이다. 늘상 활기차고 싹싹하며 “야, 너” 라는 말 대신에 “XX는 뭐 했니?” 식으로 이름을 넣어 부르곤 한다. 처음엔 오글대기도 했는데 곧 그 친구의 원래 말버릇이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늘 사람에게 친근하게 대하기 위해서 좋은 말투를 쓰기 시작했다는데 곁에서 지켜본바 이것은 본인에게 매우 플러스 요인인 것 같다.


예민함의 독


대신 예민한 본인이 남을 그만큼 신경쓰는 편이라 상처도 많이 받는다. 기념일을 챙기고 그저 지나가는 말을 기억했다가 꼭 배려하곤 한다. 그러니 되받지 못하거나 배려받지 못하면 서운할 수밖에. 한번은 사귀는 남자가 생겼는데 아침마다 과일도시락을 갖다주고 기념일을 챙겼다. 가족과 친밀하지 못한 남자친구가 너무 너무 안쓰럽다고 본인 가족과 함께 외식도 하며 챙겨 먹이곤 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받기에만 익숙해하고 더이상 그것에 대한 보답이 없었다. 한마디로 해주는건 없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냥 포기하길 권했다. 그런 성격의 사람이 변하기 어렵기도 하고 싫다는데 매달리지 말라며. 친구는 본인의 행동을 예민하게 되짚어보며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그러고 나에게 너라면 어쩌겠냐고 간절히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도 아는 것이다. 나의 대답과 본인의 행동을 섞으면 중화(?)된다는 것을.


무심함의 독


그에 반해 나는 결혼이나 육아를 이유로 연락이 뜸한 친구들이 주변에 꽤 많았다. 나 또한 그들에게 서운해서 "핏"하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운한 게 있으면 매정하리만치 손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심하게 굴다가도 어느순간 현타가 오면서 외로워진다. 기쁘거나 슬픈일에도 알릴사람이없는 그 느낌... 참 외롭다. 그럴때 이 친구는 곁에서 좋은 영향을 준다. 조금은 허무해지는 나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이켜보도록.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쯤은 연락을 걸어보기도 하고, 사이 불편한 동료에게도 먼저 안부를 묻기도 한다. 저번에 봤을 때 아프다고 했던 사람에게는 몸이 좀 어떠냐고 상황을 꼬박꼬박 묻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의례적인 건강 안부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세하게 묻다보면 정말 진심이 묻어나와 그 사람과 더 끈끈해 지기도 한다. 안되는 것을 애쓰며 굳이 붙들어 인연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 정말 내 진심에서 우러나와 주변을 살피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그 친구의 그런 성향이 부담되기도 했다. 과거에 예민한 이성친구들을 사귀어도 보았지만 늘 끝이 좋진 않았다. 그렇기에 나의 성향과 예민한사람과는 전혀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 인연이 그렇게 함부로 내가 맺고 끊어지겠는가. 어찌 하다보니 10년간을 친구로 지내며 그 친구와는 세상 둘도 없는 베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친구와 나는 서로의 장점만을 주고받으며 더욱 성장해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알고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말, 안 믿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