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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 Sarang Sep 10. 2019

알고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말, 안 믿습니다.



회사를 다니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협업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와는 다른 다양한 성격을 접하면서 즐거운 일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기도했다. 나는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성인군자의 논리를 애써 내세웠다. 누군갈 함부로 섣불리 판단하면 안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졌던 것 같다. 감히 내가 누굴 판단해, 사람은 또 다른 면이 있는거야, 이런 식의 교과서에 나올법한 말들을 되뇌이며.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많은 시행착오끝에 나는 내가 처음에 느꼈던 판단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 보는데 말을 툭툭 내뱉거나 무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성격이 원래 털털하거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좀 거칠게 자랐다는 말이 꼭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그리고 그것을 주변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남을 굳이 포장해주며 그 사람의 무례함을 참아왔다. 그치만 결국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그저 나와 맞지않는 나에게 무례한 사람일 뿐이다.


최악이었던 첫 회사, 첫 팀원들


드디어 취업에 성공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처음 발령받은 팀은 그 기대가 무참하게도 최악이었다. 40대후반 팀장은 대놓고 신입들을 반기지 않았다. 회사 특성상 그들은 정규직이 아니었고 신입들은 회사 자체에서 뽑은 정규직이었다.  팀에서는 바로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팀에 도움이 되는 경력직들을 선호했다. 지금도 생각할수록 참 웃긴 것은 내가 자취하는 집을 꼬치꼬치 물어본 뒤에 갑자기 본인 자리로 부르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그 집 시세와 구성을 살펴보며 내가 사는 평형은 어떤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거기 대고 나는 친절하게 이러이러한 비용에 이 평수이며 전세인지, 월세인지를 알려주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내 뒤에서 그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이런 델 월세로 가면 어떡해… 바보네.” 끝에 정확히 비웃음의 ㅋ자가 들렸다. 나는 못들은 척 자리로 돌아왔다.


거기다가 나는 강아지를 어릴 때부터 키우고 있었다. 회식자리에서 나의 반려동물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자, 바로 그 팀장은 가족이 몸이 안좋아서 개를 먹는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관절통에는 꼭 개를 먹어야 한다며 예찬을 하기까지 했다. 밥맛이 뚝 떨어져 버렸지만 아무 말도 못했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 사람과 꼭 안좋은 일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워크샵 다녀와서 집까지 차로 데려다 주면서 내가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것을 걱정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기엔 아주 부족한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그런 식으로 대했지만 나름 두둔하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알고 보면 마음이 따듯하다 느니, 잘 챙겨준다는 이유를 들어서. 나 또한 애써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던 이유는 그와 함께 일을 해야할 날이 아직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속여가며 그를 속으로 옹호했다.


이제는 업계에서 내게 누군가 그에 대해서 물어볼 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이제 절대 붙여주지 않는다. (나이가 너무 많아 이제 은퇴한 듯 하다. 더 이상 언급 하는 사람도 없다.)


촌스럽고 투박한 표현방식일 뿐이라는 사람


최근에 본 예능에서도 어느 유명인이 토크쇼에서 이런말을 했다. 원래 투박하게 자라서 본인은 좀 막말을 하는 편이라고, 그래서 주변에서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같이 일하기를, 또는 일하고나서 식사하기를 피했다고 한다.  그것을 몇년이 지나서 또 오해를 풀었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사람의 주변인 또한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알고보면 얼마나 따듯한지 모른다고 열심히 포장하며 훈훈하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가 아는 그 유명인의 이미지도 쭉 그랬지만 이제 그것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털털함을 가장한 무례함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떻게 자랐든, 어떤 성격이든, 사람 대 사람으로서는 지켜야할 예의라는 것이 있다. 첫 만남에서 정중한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매너를 지켰다. 회사에서도 처음부터 트러블이 생겼던 사람은 중간에 잠깐 좋아질 수 있어도 끝에는 결국 나쁜 감정이 남았다.


오래봐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와 오래 지낼 마음이 있는 사람만의 주장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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