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i Sarang Sep 04. 2019

우울증 치료제, 떡볶이

떡볶이를 언제부터 좋아했냐는 질문에 언제부터라고 딱 대답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아주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엄마 손을 잡고 어두운 재래시장 안을 구불구불 들어가서 구분도 잘 안가는 비슷비슷한 분식집들을 지나쳐 꼭 찾아가던 가게가 있었다. 하도 자주가서 얼굴을 아는 주인 아줌마가 반겨주며 뭐먹을래? 하면 무조건 떡볶이만 외쳤던게 아마도 6,7살이었던 때이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정말 어린아이 때. 살짝 매콤하면서 달달한 대중적인 떡볶이의 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렇게 어린아이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소위 어른입맛, 아저씨 입맛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떡볶이는 여전히 나의 최애음식이며 소울푸드다. 데이트를 할때도 뭘 먹고 싶냐 하면 다른 것 이것저것을 생각해봐도 결국 제일 먹고싶은건 떡볶이. 그나마 최근엔 프랜차이즈로 깔끔하면서 고급스러운 즉석 떡볶이 종류도 많아서 다양하게 찾아가서 먹는다. 심지어 부페식으로도 있어서 원하는 사리만 요리조리 골라 먹을 수 있다. 즉석떡볶이보다 배달떡볶이가 땡길때는 어플이나 전화한통이면 된다. 매운맛을 조절하고 사이드 메뉴를 고심하며 순간의 행복감을 감출 수가 없다.




회사일로 힘들거나 인간관계가 우울할 때 나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있었다. 주말에 유명한 떡볶이집을 서치해보고 찾아가보는 것이었다. 차가 없었지만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내게는 교통카드와 튼튼한 두다리, 그리고 시간이 있으니까. 개포동, 아차산, 홍대 등등… 음식 정보의 홍수속에서 떡볶이만 쳐도 내가 먹어봐야할 곳은 수십, 수백군데가 있는데 심심할 틈이 없을 수 밖에. 그리고 그렇게 유명한 곳들은 대체로 실망시키는 법이 없이 다 맛있었다. (우울한데 맛까지 없었으면 아마 난 스트레스 풀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자주 가는 떡볶이 집이 2군데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2군데가 전부 방송을 타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핫한 프로그램에서. 그 이후로 1시간씩 줄을 길게 늘어서는 바람에 한동안 가지 못했다. 큰맘 먹고 줄을 섰는데 내 앞에서 재료가 다 소진되었다고 빠꾸를 먹은 적도 있다. 그때만큼은 어찌나 방송이 원망스럽던지. 그래도 1년 정도 지나자 방송빨이 좀 빠져서 그렇게 허탕치는 일은 다행히 없었다.




연애가 잘 풀리지 않아 실연을 한 후 정말 우울해서 거의 한 두달을 눈물바람으로 지낸 적이 있었다. 몸과 마음이 괴로워 밥조차도 잘 들어가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떡볶이는 이상하게도 먹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은 많이 우울했기에 평소에 가고싶었지만 멀어서 미뤄놨던 곳에 가기로 했다. 비장하게 백팩을 매고 봉지를 몇 개 더 충분히 준비했다. 보통 떡볶이는 허접한 비닐봉지에 담아주기에 너무 뜨겁고 냄새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집에서 먼 공릉까지 지도를 보고 찾아가서 그토록 궁금했던 떡볶이를 샀다. 나는 길거리에서 그것을 몇번 더 꽁꽁 싸매고 백팩에 넣어 냄새를 차단한 후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가게에서 바로 먹고와도 됐지만 정신없이 혼밥하는걸 별로 선호하지 않을 뿐더러 1인분만 먹고 오기엔 아쉽기 때문에 평소 꼭 몇인분을 사서 집에 쟁여두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내게 필요한 건 맥떡(맥주에 떡볶이).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먹을걸 싸오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피식피식 웃음도 나오고 시시껄렁한 딴생각을 하다보니 왕복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지났다. 집으로 돌아와 예능프로를 틀어놓고 차가운 맥주에 뜨거운 김이 나오는 떡볶이를 먹으니 너무 매워서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몸이 둥둥 뜨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푹 자고 나니 우울감이 훨씬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우울증은 떡볶이로 치료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장애인의 엘리베이터 투쟁을 응원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