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behind the Deals

큰 거래 뒤 나의 작은 인생

by KJ

2020년 겨울, 오랫만의 뉴욕 출장이었다. 평소처럼 대한항공 라운지에서 자료를 보다가 나와 탑승을 위해 게이트로 걷던 중에 집에서 전화가 왔다. "식탁 의자에 정장 겉옷 하나 걸려 있는데..." 아뿔싸. 늘 시간 맞춰 탑승을 하던 탓에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급히 발길을 돌려 옷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명품 가게에서 백만원에 가까운 돈을 결제하면서 수선이 필요없을 만큼 딱 맞는 옷을 구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JFK공항으로 들어와 호텔에 도착하니 밤 시간이었다. 운동복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화기 건너 한국에 있는 와이프가 웃는다. "지금 타임스퀘어 아냐?" 타임스퀘어는 일반적인 미국이 아니다. 밤 10시. 여전히 매장들이 열려 있다. 최대한 싼 옷을 샀다. 늘 맞춰진 일정과 준비물들 사이에서 살아왔다. 준비가 안된 것을 발견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2013년 겨울엔 뉴욕에 계시던 상사에게 혼나고 있었다. "왔으면 나하고 술을 먹어야지!" 그 때는 챙겨주고 싶은 그 마음을 잘 몰랐다. 뉴욕의 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리아타운 한식 주점들은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다. 소주하우스나 동천홍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맨해튼에 무슨 "소주"하우스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5th Avenue와 32번가에 위치한 소주하우스는 서울 강남 만큼이나 활기가 넘친다.


술을 마시고 호텔 방에 들어와 씻으려 들어갔다가 그것을 발견했다. 미국 바퀴벌레는 상당히 크다. 서글퍼졌다가, 술 김에 분노가 치솟았다. 거북목으로 두 번이나 쓰러지면서 어디가 아픈 지도 모르던 때였다. 수건을 집어던지고 밟았다. 발 밑에서 부서지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 곧 수건이 통째로 움직였다. 나의 발은 미약했고, 바퀴벌레는 너무 튼튼했다. 수건 채로 쓰레기통에 박아버렸다. 세상 화려한 글로벌 투자업계의 한중간에 있었지만, 내 삶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지 묻는 이들이 있었지만, 납득할만한 답은 없었다.


2012년 보스턴에서는 회의 중간에 머릿속이 핑 울렸다. 뉴욕에서 시작해 하트포드(Hartford)를 거쳐 도착한 터였다. 아침부터 시작한 실사는 끝날 줄 몰랐다. 저녁 식사 시간 즈음 되자 회의를 이어갈 것인지 식사를 할 것인지 묻는 운용사에 당연히 일부터 마무리하자고 했고, 결국 밤 9시가 되어서 호텔 펍에서 생맥주 한잔에 버거를 물고 있었다. 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한 증권사에 있던 시절, 국내를 담당하던 분이 "나도 뉴욕에 출장을 가고 싶어서" 미국 건을 검토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 마음이라도 있었다면, 더 즐길 수 있었다면 조금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이다. 상식은 우리를 배신한다.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보다는, 엑셀에 정리된 숫자들을 바탕으로 판단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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