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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May 06. 2023

카라바조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로 삶을 마감한 종교화가

17세기의 바로크 화가 미켈란젤로 다 메리시 카라바조(Michelangelo da Merisi Caravaggio, 1573~1610)는 북부 이탈리아의 밀라노 근교에서 태어났다.


카라바조의 초상화

1592년경 젊은 화가 카라바조는 밀라노를 떠나 로마로 갔으며,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초기 로마에서 극히 사실적인 정물화를 그렸으나 1540년대 후반에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을 위해 혁명적인 종교화를 제작하였다.


특히 <성 마태의 부르심>과 <성 마태의 순교>에서는 그리스도를 하층사회의 인간을 모델로 하여 외적 추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거기에다 강한 측면 광선을 주어, 그 명암의 격렬한 대조에 의해 극적이며, 현실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정신적 표현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The Martyrdom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960)


카라바조는 오만불손하고 격한 다혈질 때문에 각종 다툼과 시비에 휘말려 빈번히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결국에는 살인까지 저질렀다. 이토록 극단적으로 오만불손하고 격한 기질의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 그림으로는 믿기 힘든 세밀함에 놀라게 되고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구도와 색감이 아주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카라바조의 로마 시대 작품은 <사도 바울의 개종(1601년경)>, <그리스도의 매장(1602-03년경)>, <성모의 죽음(1606)> 등이다. 그리고 도망자 시절의 작품인 <그리스도의 탄생(1608년경)>에서는 침울한 표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카라바조의 회화에 있어서 실제만을 테니브리즘 (Tenebrism, 암흑파暗黑派)을 창안하여 시각적으로 영적 신비와 표현을 강한 명암의 극적 대비로 화면을 채우는 기법이다. 그의 사실적인 회화는 그가 로마를 떠난 1607년경부터 1620년까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화풍을 계승한 화가는 로마의 오라치오 젠트레스키(1565~1628), 만프레디(1580~1620) 그리고 카를로 사라체니(1585~1620) 등이다.


그는 도망자로서 로마를 떠나 만년을 남부 이탈리아를 방랑하며 종교화를 그려 로마의 교황청에 눈에 들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610년 짧은 방랑의 생을 마감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종교화를 그리는 사람에게는 그림그리는 기술보다는 그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가 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앞으로 카라바조가 그린 몇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카라바조는 종교화를 그리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상상하면서 그의 그림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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