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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Apr 29. 2023

십계를 받는 모세

무티에 그랑발 성경의 성상회화

중세기 그리스도교 미술에 있어서 성서 사본화는 비잔틴의 모자이크 못지않게 다양한 성상회화를 확립시킨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상회화는 종교적인 신성화 교의(敎義)를 전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특히 문맹자나 이교도의 만족(蠻族, 게르만족, 야만족 등을 지칭)을 그리스도교로 교화하기 위하여 성상을 상징적으로 도상화하는 표현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성서 보급의 임무를 맡은 각지의 수도원에서 자체 사본소를 통해 성상화 사본을 그 성서의 페이지 수와 맞먹을 정도로 제작하여 전 그리스도 교회에 보급시켰다.


성상화를 삽입한 성서사본은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원본과 사본이란 개념을 떠나 신성시되어 호화로운 귀금속이나 보석 등으로 외장을 조각, 장식하여 제단에 비치하기도 했다. 사본화에 나타난 성상회화의 공통적인 특색은 신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물(성상)의 전형, 의상에 이르기까지 도상화한 것과 그 표현에 있어서 동적, 사실적인 형체표현과 입체감을 의식한 볼륨 있는 채색법을 사용한 것 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십계를 받는 모세>는 무티에-그랑발 성경(Moutier-Grandval Bible, 프랑스 투르, c.830-840)의 성상회화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채색 삽화로서 중세기 성상화의 예술적 감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제작 연대가 840년경으로 카롤링거(Carolingian)의 성 마르틴 수도원 사본소에서 제작한 성서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면은 구약성서 ‘출애굽기’ 중에서도 가장 핵심을 이루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를 받는 모세에 관한 내용이 상하 2단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상단은 모세가 십계를 받는 광경이고 하단은 모세가 십계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는 장면이다.(출 19; 24, 31, 34). 


더 자세히 화면을 살펴보면 상단의 중심을 이룬 시내산이 온통 연기로 쌓여 뭉게뭉게 타오르는 불꽃에 곁들여 상승되어 보이고, 산꼭대기에는 빽빽한 구름 장막이 이중 커튼처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양쪽 상단에 천사가 보이며, 구름 사이에서 십계명판을 든 손이 밖으로 내민 것과 소리를 나타내는 듯한 주위의 날카로운 사선 등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그곳에 음성으로 강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화면 중앙에 선 모세가 맨발인 것은 출애굽기 3장 5절의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고 한 말씀대로 표현된 것이라 하겠다. 


그림의 하단은 장식적으로 꾸며진 성전 안에서 모세가 십계명판을 들고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아가 십계를 전하는 진지한 모습과 이를 긴장된 표정으로 경청하는 민족들,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 서있는 대제사장인 아론을 볼 수 있는 한편, 상하 화면 모두 보이는 모세 후면에 그림자처럼 그려진 인물이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당시 화가들은 성서의 글이 전해주고 있는 내용을 충실히 표현함과 아울러 격조 높은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뜻에서 만족하지 않고 때로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에도 여분의 삽화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교회의 신학자들은 그림을 통해 표현된 모습들이 우상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감정과 상통하고 공평을 기한 성상화에 관한 신학을 정립시키려고 하였다. 


따라서 691-692년 트롤로(Trullo)에서 개최된 종교회의에서는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을 정식으로 규제하고 그의 인간화에 관한 근거를 정의하여 성상 회화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726년 비잔틴 왕국의 황제 레온 3세는 성상화를 우상숭배로 단정, 이를 숭상하는 사람들을 탄압하여 종교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성상화 파괴운동은 비잔틴 왕국을 멸망 직전까지 이르게 했고 그 세력은 약화되었지만 843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782년 니케야(Nikaid)에서 소집된 종교회의를 통해 해제될 수 있었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여도 좋은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용모를 그리는 것을 부인하는데 모두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회화적 묘사의 가능성 문제에 있어서는 종교화를 지지하는 파들의 주장이 관철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참으로 인간이 되었으므로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중세기 성서 사본화의 성상회화는 더욱 종교적인 차원으로 격상되어 눈으로 보는 성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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