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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Jan 22. 2022

빈센트 반 고흐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물결을 그린 수행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 노르트 브라반의 가난한 마을에서 성직자와 예술가 집안의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고흐는 부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16세 때 런던으로 건너가 미술상의 점원으로 일했다. 하숙집 주인 딸을 사랑했으나 실연을 당하고 슬픔에 빠져 있다가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전도사의 길을 걸었다. 


벨기에의 폴라나쥬 마을에서 전도에 몰두하던 중에 탄광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광부들과 똑같이 고생하며 노력하였으나 그의 심리적 상태가 불안함을 걱정한 선교단체의 사찰단은 그가 전도사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고 크게 실망한 성직을 떠나 빈곤과 실의를 달래기 위해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고흐는 얼마 동안 어두운 시기를 보냈으나 미술상으로 근무하는 동생 테오(Theo)가 형에게 항상 따뜻한 우애를 보냈으며, 그때마다 그는 편지를 보내어 그들은 서로의 심경을 전달하고 있었다.


동생 테오의 도움으로 1886년 파리에서 코르롱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로트랙과 만나고 인상주의 화가들과 접촉하였다. 이러한 만남들로 인해 고흐의 작품은 어두운 색채에서 밝은 색채로 바뀌게 된다. 1888년 남프랑스 아를르로 가고 싶어 하는 고흐를 위해 동생 테오는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여비와 생활비를 성심껏 도왔다. 테오의 형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고흐는 아를르에서 거의 매일 서신으로 테오에게 자신의 희망과 생각을 알렸다. 아를르에서 고흐의 천재성이 폭발하였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태양, 약동하는 색채, 이 생동하는 자연은 절망적인 고통을 예술로 승화된 표현이었다. 이때 '해바라기', '하네의 다리', '밤의 카페'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고흐는 선배 화가 고갱을 아를르로 초대했다. 그림에 대한 견해와 화풍이 정반대 인 두 사람은 자주 크게 논쟁을 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고흐는 자기 왼쪽 귀를 도려내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만다. 사실 고흐는 선천적인 뇌장애로 인한 발작으로 평생 괴로움을 받고 있었다.  이 사건으로 고흐는 병원에 수용되고 이듬해 생레미의 요양병원으로 옮겨간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제작의 의욕은 강렬해서 병원 종업원이나 근방의 풍경을 그렸다. 그의 <올리브 나무>의 연작은 이때 그려진 것으로 꿈틀대는 생명력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고흐는 1890년 5월 병원에서 퇴원한 후 파리로 간다. 그는 잘 아는 의사 가세의 도움을 받아 파리 근교의 오베르촌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으나 심해지는 뇌장애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1890년 7월 권총 자살로 37세의 짧은 인생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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