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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Feb 22. 2022

Ep. 6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 맞기 전까지는. -애증의 클라이언트 잡





F&B 브랜드는 보통 여름, 겨울 시즌 마케팅에 집중한다. 여름은 최고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대목으로 박 터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시원한 매장, 갈증을 해소해 줄 음료와 디저트를 무기삼아 ‘작년 여름 매출' 이라는 벽을 뛰어넘으려 부단히 애 쓴다. 브랜드 내부에서는 올해 식음료 트렌드, 제철 과일의 당도와 원가, 고객의 입맛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니크한 음료를 개발한다. 메뉴 하나가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하고, 그것을 ‘시그니처 메뉴'로 부르며 시장에 출시한다.


​작년 여름 반응이 좋았던 빙수는 메뉴를 갈라치기하여 마치 새로워진듯 올 여름에도 다시 등장했다. 빙수를 필두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고객들에게는 ‘여름 굿즈'라는 전리품이 하사되었다. 에코백, 미니 트렁크, 텀블러 등 온갓 굿즈가 난무했고 ‘캠핑' 트렌드에 맞춰 캠핑의자, 돗자리, 테이블은 웃돈을 얹어 중고시장에 불티나게 팔렸나갔다. 그것을 사기 위해 고객들은 이른 아침부터 매장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음은 물론이며, 바로 앞 사람에서 굿즈가 매진되자 믿을 수 없는 잘못됨을 바로잡고 싶어 매장 직원들과 실랑이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배보다 배꼽이 커진 기이현상' 소비자들은 고차원적인 척 하며 단순했고, 브랜드는 ‘프리퀀시 이벤트' 라는 미명하에 고객의 지갑공략을 충실히도 이행했다.


​지갑공략을 할 전략으로 핵심이 되는 두 가지 종류의 빙수영상을 제작,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광고를 올리기로 했다. 모자라고 모자란 가용 예산을 꺼내들면서 클라이언트는 언제나 최상의 효과를 기대했다. ‘섯다’에서 아홉끝으로 그 판을 이기려고 벌써 웃음이 가득했다. 판에 낀 다른 사람이 구땡을 잡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자기들의 패는 형편없음에도 우직하게도 그것을 밀어붙인다. 그것들을 일일이 받아주고 현실을 자각시켜 줘야 하기에 피곤하고 고되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게 차라리 더 편할지도 모른다.


​사진과 다르게 영상은 소품, 장소, 촬영, 편집 등 예산에 비례한 결과를 당연하게 내어준다. 그래서 광고인은 소위 영상의 ‘깔’만 보고도 어느 정도 제작비가 투입되었는지 얼추 알아본다. 적은 예산에 좋은 영상 결과물은 백에 하나인데, 클라이언트는 그걸 설명해줘도 모른다. 그리곤 결과물이 마음에 안든다며 트집잡기는 부지기수. 비교 대상으로 보여주는 영상의 제작 예산이 몇 배나 되었는지 알지도 못 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포커스는 오직 자기면피. 담당자 자신이 무능력하게 보일까봐, 아무것도 모르는게 들통날까봐 가리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광고 담당자에게 면피를 위한 헬프를 치다가도 바로 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 따로 없는 존재.


​예산 안에서 겨우겨우 팀을 구성해 촬영을 한다. 그 예산으로 부를 수 없는 나름 ‘어벤져스'급 팀을 구성하면서 사정을 설명하여 인건비를 네고했다. 결과의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으니까, 최선의 결과를 내고자 했다. 컨셉에 어울리는 모델을 제안하고, 빙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섭외했다. 정해진 촬영 시간에서 집중해서 찍어내기 위해 사전에 몇 번 빙수를 만들어보는 연습도 했다. 준비는 착실하게 되어 갔다. 하지만 촬영 당일, 브랜드 제품개발팀에서 이렇게 만든 빙수로는 촬영할 수 없다며 백태클을 시전했다. 가슴속에서 ‘레드카드' 수십장을 꺼내 던지고 싶었다. ‘여기서 나가주시라고' 하며. 이미 사전에 연습하고 컨펌된 것들을, 그 노력들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쉽게도 만들었다. 우리 측은 물론이고, 브랜드 마케팅팀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담당자는 나만 쳐다보며 눈빛으로 간절하게도 말했다. ‘얼른 이 상황을 바로잡을 대안을 제시하라고’


그들이 원하는 빙수로 만드는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작 그 빙수를 많이 찍지도 못했으나, 스텝들의 살을 깎는 노력으로 그 예산에 비해 결과물은 잘 나왔다. 제품개발팀에서 공들여 만든 그 ‘모형같은 빙수탑'은 고객들이 사먹을 때마다 ‘양이 적다, 토핑이 적다'며 악플의 근원이 되었다. 줄줄이 달리는 댓글들을 볼때면 ‘당신들은 상관없고 우리 일만 한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얼음탑을 만들던 그들의 얼굴이 항상 오버랩되었다. 그 해 여름 아무리 더운 날에도 빙수는 쳐다보지도, 먹지도 않았다.


​치열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엔 몇 년 동안 이어오던 뮤직 페스티벌을 열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포토존을 멋지게 만들어 고객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되고 그 외 몇개의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실행에 옮겼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사전 2명의 운영요원을 구해야 한다고 몇번이나 얘기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행사 당일 현장을 봐줄 사람을 못 구했단다. 주말 이틀동안 하루종일 고객들의 사진을 찍어줬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도 고객들이 정말 좋아했기에 보람차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겨울 ‘하이라이트’는 단연 다이어리다. 타 브랜드, 유명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는 기본에 디자인, 패키지 등 심혈을 기울인 겨울 ‘프리퀀시' 전쟁이 또 한번 열린다. 다이어리로 시작해 다이어리로 끝난 겨울엔 사진, 영상 모두 앞서 말한 여름과 비슷한, 아니 더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준비해두면 어그러지고, 계획하는대로 족족 틀어졌다. 시일이 급한 일은 무마되기 바빴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발등이 다 타버리고 난 뒤 급하게 결정되었다. 1년 동안 내공이 쌓였을까. 나 자신과 타협했을까. 어느새 모든 걸 적당히 넘기게 되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100 아니 200을 줘도 50은 커녕 30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더 이상 상처받기 싫고, 애쓰기 싫고, 해주기가 싫었다. 나는 진심을 다 했고, 할 만큼 했기에.


여러 클라이언트 잡을 처리할 때마다, 밤을 새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때마다 내가 투자하는 시간, 마음, 에너지에 가치를 매겨 매달 들어오는 월급과 비교했다. 앞자리가 바뀔리 없는  일곱자리 숫자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었고, 이런 생각이 들때쯤부터 업에 대한 회의감은 슬그머니  안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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