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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Mar 01. 2022

Ep.7 어쭙잖은 마이크로매니징

관심 좀 꺼주세요, 제발






마이크로 매니징. 언제부턴가  상에서  단어가 자주 보이곤 했다. 상사가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여 관리하는 뜻이라나. 장점, 단점 가릴것 없이 직장인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  직원이 7명인 우리 회사도 마이크로매니징이 있었다. 업무는 아닌 개인사 영역으로, 대표의 의견없이 팀장 본인의 독단으로. 부당하고 부조리가 넘치는 군대보다  쓰레기 같은 행태도 있었다.


​해결해주지도 않을 일에 대한 고충을 들어주는 척하며 팀장은 회사 생활의 만족감에 대해, 이성관계에 대해, 가족사에 대해 묻곤 했다. 숨길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것까지 일일이 얘기하고 공유해야 되는지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러기도 싫었고. 질문은 짧은 반면 자기 이야기는 수도 없이 쏟아댔다. 여자친구 문제, 결혼 준비, 예비 장인장모 될 사람들 이야기부터 대표 뒷담화, 클라이언트 욕까지. 불평 불만으로 가득찬 이야기들. 앞으로 한 발자국도 진전이 없을 말들이 허공에 쏟아졌다. ‘얼마나 더 들어줘야 될까?’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에게 그렇게 평등하게 대했다. 심지어 다른 사원의 자리에 앉아 메신져 대화창을 심심치 않게 열어보기도 했다. 그 작은 창에 사원끼리 나눈 자기 욕이 있을줄은 몰랐겠지. 판도라의 상자를 당신이 직접 제 손으로 열었다. 노발대발하는 그를 보니 묵은 변비가 내려가는 듯 후련했다.


​팀장은 이전 회사에서 대표의 셔츠를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오는 일까지 해 봤다고 했다. 그것뿐이겠냐만은 자기가 개인비서도 아닌데 그런것까지 했다며 목에 잔뜩 핏대를 세웠다. 사람이라면 응당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팀장에게 대표가 법인 명의로 차를 내려줬다. 이때까지 열심히 일해준 보상이라고 말하는 대표를 보며 하루 오만원씩 나가는 팀장의 새벽 택시비를 아끼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매일 야근하니 리스비가 택시비보다 싸게 나올만도 했다. 차를 타고 출근하는 팀장은 항상 아슬아슬한 시간에 맞추거나,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2-30분씩 늦게 출근했다. 주차장이 없어 근처 공영주차장에 월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도착할때면 어김없이 후배에게 전화했다. 자기 차를 주차장에 갖다 놓으라며. 그 전화가 울릴때마다 후배는 한번도 거르지 않고 욕을 해댔음을 물론이고, 씨발 씨발 거리면서도 팀장을 위한 발렛파킹을 했다. 셔츠는 가져다주기 싫었지만, 내 차는 주차를 해달라. 인간의 온상은 그렇게 쉽게도 드러났다. 담배 심부름, 자기가 걸리면 온갖 인상을 다 쓰던 내기를 가장한 커피 쏘기 등 말하면 입 아플 부조리는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지 않았다.


​클라이언트가 왜 우리 회사에 일을 맡기는 지는 모르겠으나, 회사의 일이 많아지면서 직원을 더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구직 사이트에 올린 공고는 그 누구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별 수 없이 필드에서 일하던 학교 후배 두 명을 채용했다. 카피라이터를 하다, 디자인을 하다 기획자로 넘어 온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처음엔 서툴 수 밖에 없었고, 일의 프로세스를 익힐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지 못 했다. 그에 비해 진행되어야 할, 맡아야 할 클라이언트 업무는 촌각을 다투는 건이 많았다. 그렇게 몸을 풀새도 없이 전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의 일 처리가 늦어지거나 실수를 할때면 팀장은 폭탄처럼 터지기 일쑤였고, 한 차례 불꽃놀이가 끝나면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형이 후배들 관리 좀 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일 붙잡고만 있잖아.” 여기까진 이해했다.

”나도 이제 6년차인데, 언제까지 내가 사원들한테 이런거 가지고 열 올리고 일일이 가르쳐야 하냐고”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어디서부터 기인한지 모르는 내리갈굼까지 문화가 된 회사. 팀장의 말은 한 귀로 흘리고, 후배들에게 짬이 날 때마다 업무 노하우를 알려주고 도와주었다. 절대 닦달하지 않았고 기다려주었다.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저런 선배가 되지는 않아야지.’ 수백번 되뇌이면서. 직원들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고 예술대학의 과도한 선,후배 문화를 겪은 우리 모두가 어느정도 내성이 생겼기도 했지만 여기는 엄연한 직장이고, 직장에서는 부당한 것들은 더욱 없어져야 할텐데 ‘경력’을 무기 삼은 팀장은 학교에서의 모습보다 오히려 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업력과 년차, 그리고 직함을 쉽게 믿지 않는다. 사회에서 일해보니 저연차에도 선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고연차에도 어떻게 저렇게 일하고 매달 돈을 벌어가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은 더 많았다. 영혼까지 받쳐 일하는 사람은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제 풀에 지쳐 떠나고,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나와 일하는 사람은 기대가 없으니 대충 일 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기대가 없으니 당연하게도 상처받지 않는다. 너무 때묻어 버려 객관적으로 자기를 평가할수도 없는 무지의 상태. 아이러니 하게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에는 정평이 나 있다. 내가 나가야 할 이유는 모르지만, 저 사람이 나가야 할 이유는 끝도 없이 말한다. 섬뜩함을 느꼈던 것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오래동안 회사를 다니게 된다는 것, 그들의 문화가 곧 사내 문화가 된다는 것, 그들의 방식이 옳은 방식이 되고, 왠지 그 방식으로 일해야만 제대로 일하는 것 같은 의식이 자리잡는다는 것.​


모두가 썩어 있으니까 아무도 알지 못 한다. 이 더러운 악취가 나에게서 나는지, 저 사람에게서 나는지 빨리 판단하지 못 한다. 회사는 가끔 철책으로 둘러쌓인 군 부대를 연상케 했다. 사람이 죽어도 외부 사람은 쉽게 알지 못하는 폐쇄된 공간, 무슨 일이 생겨도 바깥에서는 알 수 없는 집단이 되었다. 가끔 구직 공고에 노크를 하지 않은 그들이 다행스러운 선택을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나에겐 쓰라린 ‘패배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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