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장을 받아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트위터, 우버, 스냅챗.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모두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이라는 것. 기업가치가 1조 원이 넘어 유니콘 기업으로 불리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국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유니콘 기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주로 IT를 베이스로 여러 사업분야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는데, F&B 브랜드 다음으로 내가 맡게 된 브랜드 역시 교육 테크 스타트업이었다. “기존 책으로만 공부하는 토익 시장에서 앱과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새로운 교육 혁신을 가져오고자 한다"는 대표의 말은 또 새로운 ‘약장수'의 등장인가 싶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브랜드의 첫 앱 출시부터 시작해 시리즈 C 투자를 받을 때까지 2~3년 기간을 함께 하였고, 하나의 브랜드 및 서비스가 생겨나 자리 잡고,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옆에서 직접 느껴볼 수 있었기에 매우 좋은 경험으로 기억되는 클라이언트 잡이었다.
한국 취업 시장에서 토익 점수로 영어 가능자(?)라는 진위를 판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수 십 년 동안 굳어진 ‘교재, 학원, 강사’를 아우르는 토익 교육 문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 대체할 수 있다고 하여도 보수적이고 폐쇄된 시장일 수밖에 없는 카테고리. ‘남한산성' 같이 문을 걸어 잠근 굳건하고도 철옹성 같은 교육 문화와 환경을 바꾸고자 하는 게 브랜드의 의의이자 사명이었다. ‘학원과 교재, 강사에만 의존하는 토익 문화의 탈바꿈'을 위한 모든 전략과 전술에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 부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새롭고 또 신선하기도 했다. 그것도 결국 사람이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만.
개발자들로 똘똘 뭉친 크루에서 몇 번의 테스트를 거치고 베타 버전의 서비스가 나오기 시작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브랜드와 함께 기획했다. 특이한 점은 우리 회사 대표가 이 교육 스타트업 브랜드의 마케팅 이사 정도의 포지션을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 스타트업 대표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고, 브랜드 내부 마케터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 역시 정확히 어떤 방향과 솔루션으로 시장에 챌린지 해야 하는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스타트업답게 빠른 의사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이 틀리다고 판단되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성과를 버리고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어제까지 고객의 유입과 매출을 확인하고 내일의, 이번 주의 전략을 짜는 즉각적인 리액션이 베이스이자 문화가 되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쓴소리 내뱉는 것을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았다. 배를 띄운 이상, 그들에게 잠시라도 정박하여 쉴 수 있는 여력, 여유는 없어 보였다. 정박한다는 것 자체가 스타트업에 있어 다시는 바다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회사들이 몸소 보여주었기에 망망대해 그 위에서 방향타를 수정하고 돛을 올리고 내리면서 바람의 방향을 면밀히 살폈다. 브랜드 대표가 선장이라면, 우리 대표는 조타수였다. 그들이 얼마나 조타수를 찾아대는지 대표의 전화는 매번 통화 중이었고, 정작 우리 배는 난파하기 직전인데 며칠 동안 그 배 위에서 방향을 조정하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대표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조타수의 등장, 그것은 나였다.
조타수의 역할을 이어받자마자 출근을 클라이언트 사무실로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파견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었던 것. 꼴 보기 싫은 팀장을 안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았다. 스타트업의 ‘S’도 모르는 내가 직원처럼 함께 미팅하고, 제작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일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 문화에 대해, 토익 시장에 대해, 브랜드의 서비스에 대해서도 서서히 감을 잡고 예리하게 각을 좁힐 수 있었다. 전후 미국의 광고 회사에서 폭스바겐 ‘비틀’을 처음 광고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비틀' 자동차를 모두 분해해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차를 알아야 차를 파는 세일즈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겠다. 그리고 그들은 광고계에서 수 십 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전설 같은 ‘비틀' 광고를 만들어냈다. ‘정공법'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브랜드 대표, 마케터와 함께 ‘비틀'처럼 우리의 서비스, 우리의 기술, 우리의 고객을 하나씩 뜯으면서 다시 조립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