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컨텐츠, 우리를 위협한다.
그들은 우리가 더 원시적인 동물이 되도록 부추긴다. 백화점 인테리어는 점점 더 휘황찬란해지고, 페이스북에서는 점점 더 텍스트보다 이미지와 동영상이 많아진다. 그곳은 선동가와 음모론자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받은 감정과 욕망의 자극을 더 큰 자극으로 증폭하는 감수성 예민한 이들이 이곳에서 인플루언서라는 아주 정확한 이름으로 불리며 환영받는다. 의미를 묻고 논리를 따지는 사람들은 진지충이 되어 사라지고 인간 트랜지스터들이 대접받는다.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중 42p.
TV의 시대가 가고 유튜브 및 OTT 서비스가 부각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자율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환경에서 퇴근하면 TV로 각종 뉴스와 오락쇼를 보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 지금의 모습은 달라진 매체 소비의 단면을 절실히 보여준다.
그만큼 접근성이 편리해졌지만 가장 경계해야 되는 것이 OTT 서비스가 아닌가 반추한다. ‘킹덤’이 K-드라마, K-컨텐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쏘아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징어게임’이 46일 동안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가장 오래 1위 타이틀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퀸스 갬빗’과 타이기록으로. 그 뒤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애니메이션 ‘아케인’에 자리를 내주면서 박수받으며 내려오는 듯했으나 11월 다시 한번 하루 동안 1위를 기록하며 47일간 1위를 기록한 역사적인 작품이 되었다.
’오징어게임’이 오픈되자마자 국내에서도 대대적인 열풍이 불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런칭전부터 이태원역에서 대규모 프로모션을 시작하고, 너나 나나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1년 할로윈의 메인 코스튬은 오징어게임 관리자 복장과 참가자의 체육복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뽑기 게임으로 길바닥에 앉혔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가 실적 발표 행사에서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하며 열풍의 마침표를 찍었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들썩거렸다.
그러나 정작 ‘오징어게임’ 콘텐츠의 질은 개인적으로 불호에 가깝다. 50분이 넘는 콘텐츠 9편을 무난하게 이끌어가는 오락성은 인정하나 작품성이 있나?라고 물어본다면 ‘No’라고 단언한다. 9편을 다 보고 든 생각은 ‘재미는 있네, 근데?’에서 끝나버렸으니까. 식상하고 뻔한 스토리, 낡디 낡은 인물들의 과거 조명 방식, 인물의 과거 스토리로 포커스가 들어가면 엿가락처럼 스토리가 늘어진다. 엿가위로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게임의 방식이 처음 본 것들이기는 하니까 해외에선 그게 신선하게 다가왔나 보다.
456억이라는 허황된 꿈에 나도 모르게 ‘속았다’라고 결론짓는다. 오직 돈을 좇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는 방식은 너무도 가학적이고, 탈락되는 인물에는 너무 무신경해진다. 우리네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현상에서의 가학성도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빠르게 끓고 빠르게 식는다. 지금 한국 사회 역시 불법으로 돈을 벌고, 불법으로 사람의 운명을 가른다. ‘나만 아니면 돼’는 내로남불이 이렇게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구나 느낀다. 우리도 그저 게임을 지켜보는 VIP에 지나지 않을 뿐. 그 게임에 참가할 마음들은 1도 없다.
’ 얼마나 많이 회자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누군가 ‘어제 그거 봤어?’라는 말 한마디면 주변 모두가 그걸 봐야 한다. 보지 않고선 대화가 어렵다.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종용하는 한국 사회의 대화 방식인가 싶다. 12년의 교육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것을 찾기보다 그저 주입된 것에 만족해야 하고, 남들과 다르면 다르다고 맞고, 튀면 머리채가 잡혔으니까. 머리가 튀어나오면 맞는 ‘두더지 게임’이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나타내는 현상이라 본다. 그래서 ‘잘하지도 말고 못하지도 말고, 중간만 해라’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나보다 잘하고 잘 나면 나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으니 깎아내려야 하고, 평균보다 못하면 손가락질한다. ‘다 하는데 왜 넌 못하냐고’. 그렇게 서열을 나누고 그렇게 순서를 가린다. 이 긴 줄에 내가 어느 정도에 서 있는지 모두 칼자루를 들고 확인한다.
’ 회자된다’는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오징어게임’이 더 이상 나올 단물이 빠지고, 김태호 pd의 넷플릭스 데뷔작 ‘먹보와털보’가 오픈된다. 비와 노홍철이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사람을 만나며 각양각색의 여정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바이크를 오랫동안 타던 본인에게 꽤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콘텐츠의 내용을 물어봤다. 바이크에 관심조차 없던 이들이,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 하던 이들까지 끌어들이는 OTT 콘텐츠의 파급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하면 OTT 콘텐츠만 보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그들의 시간을 킬링 하고 있는 거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개인적으로, 소중한 시간을 내가 선택해서 잡아먹는 킬링타임 콘텐츠를 극도로 싫어한다. 킬링타임 콘텐츠를 어떻게 가를 수 있을까.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선 누워서 보는, 볼 수 있는 콘텐츠는 모두 킬링타임 용이다. 영감을 주는, 감동을 주는 웰메이드 콘텐츠는 누워있어도 앉게 만들고, 책상에 앉게 만든다. 오징어게임은 탈락이고 먹보와 털보는 볼 생각도 없기에 예선 탈락이다.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부추기는, 유료 결제회원 잡기에 혈안이 된 OTT 서비스가 돈이 되기는 하나보다. K-콘텐츠 열풍을 이젠 ‘고요의 바다’가 이어받아 항해한다. 투자자만 흥행하고 개미들은 곡소리 터졌다고 하고, K-콘텐츠의 최신 실패작이라고 외신은 평가했다. ‘뭘 볼지 뒤적거리다 1시간이 지나간다’는 넷플릭스에서 왓챠로 갈아타고, 이젠 디즈니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3파전 체계를 갖췄다. 유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디즈니로 갈아타기 위해 삼삼오오 아이디 공유를 위한 그룹을 구성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더욱 없어지고, 영상을 보는 사람은 종잡을 수 없이 생겨난다.
영감을 받고자 하는 시간은 쪼개도 쪼개도 적은데, 이불속에서 킬링 해도 되는 시간은 많아진다.
의미를 묻고 논리를 따지는 사람은 진지충이 되어 사라지고, 콘텐츠를 가지고 자극하고 증폭하며 같은 것들을 실어 나르는 인간 트랜지스터들은 대접받는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백윤식 배우가 분한 이강희 주필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고. 우리 대중의 냄비근성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정확히 꼬집은 대사인데, ‘우린 개, 돼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불속으로 들어가 OTT 콘텐츠를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의심해 본다.
<내부자들>의 이 장면을 이불속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이불 킥인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