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평생에 걸쳐 이어질 긴 선을 그려 내기 위해 오늘 하루 치의 점을 찍는다.
『휴식의 말들』, 공백
’지난주 게임은 잘 풀렸던 것 같은데….‘ 탁구장 리그전에서 한 번을 겨우 이길까 말까 하는 날. 얼마나 더 열심히 쳐야 하나 싶었다. 구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탁구라는 것을 안다. 내가 원하는 실력 정도를 치려면 무려 10년의 호흡을 가져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가늠되지 않는 긴 시간에 대뜸 놀랐었다. 하루에 길면 네다섯 시간을 치는 만큼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속이 탈 때가 많다.
어떤 날은 고수와 비등하게 게임을 하다가도,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져 버린다. 하루하루 널뛰기에 퐁당퐁당, 안정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헌데 주변에서 내게 ’많이 늘었다‘는 말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처음엔 기분 좋으라는 립 서비스인 줄 알았으나 진짜 실력이 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었다. 갈길이 멀기에 빨리 실력이 늘긴 바라고, 욕심이 과하니 계속 채근하게 된다. 당근도 없는데 채찍질만 해대니 얼마나 고역인가.
얼마전부터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 꽤 오래 달려온 친구에게 이런저런 팁을 듣는다. 꾸준히 달리며 필요한 근육이 자리 잡게 하고, 체력과 지구력이 붙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당장 얼마나 빨리 뛰는지 보다, 얼마나 오래 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강조한다. 뭐든지 잘하기에 앞서 그 근간이 되는, 기초가 되는 것들을 먼저 쌓아야 하는 것. 매번 그 단계는 쉬이여기고 생략하곤 했다. 그리고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장애물을 만나는 순간이 오면 갖은 불평을 늘어놓았다. 운동뿐만 아니라 삶으로 외연을 넓히면 어떤 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특성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보다 보니 이제는 오롯한 과정의 중요성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하루키가 열정적인 마라토너라는 사실은 그의 팬이라면 알 것이다. 그는 에세이에서 ’달리기’의 과정과 ‘글쓰기‘의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한다. ’하지 않을 이유가 한 트럭이나 있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다‘는 말로 무너지지 않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꾸준히 지킬 것을 강조한다. 게으른 천재보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 1시간이라도 글을 쓰는 부지런한 둔재를 치켜세운다.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켜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경험을 통해 건넨다. 글밥을 먹으며 살고 싶은 나이기에 하루키의 이런 조언에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기하게도, 지금 열중하는 것들 모두 오랜 호흡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들. 탁구를 처음 치면서, 2-30분을 처음 달리며 기초를 다져가듯 오래도록 글을 쓸 수 있는 초석을 다져보려 한다. 지금은 워밍업을 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은데 실패하기 두려워 몸만 풀고 있기도 하다. 실패하고 또 실패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주저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 가장 자신 없던 것들은 빠르게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긴 호흡으로 일련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성격이 급해 조금씩 해보다 질리면 언제 열정을 쏟았냐는 듯이 내팽개쳐 버리곤 했다. 이제는 자신 없던 것들을 묵묵히 해보려고 한다. 평생에 걸쳐 긴 선을 이어나가기 위해 주어진 하루에 점을 잘 찍어봐야겠다. 그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