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세상, 환경과 공간의 중요성을 복기하며
배운다는 의식도 없이 배워지는 것들로 한 존재가 형성된다. 한 존재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의지도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존재는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
<쓰기의 말들> , 은유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가장 많이 받는 오해 중 하나는 단연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그쪽의 카테고리와는 좀처럼 매치가 안될 때도 있다.
살다 보니 활자라는 것, 글이 근간이 되는 소설, 시, 에세이 등 여러 컨텐츠를 접할 때, 마음과 몸에 위로와 편안함을 느낀다. 무언가를 읽고 깊이 공감하고, 쓰는 시간에는 온 세상이 고요해지고 나만의 세계가 열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이너 피스’가 나에겐 책과 글인가 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지금의 내가, 아니 과거부터의 내가 어쩌다 글과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집안에 유명한 문인이 있더라, 그 집은 문인 집안이다’ 라거나, ‘남들은 글을 떼는 나이에 소학을 읽었다’라는 흥미롭고 천재적인 고전 이야기는 없으니 조금 따분할 수도 있겠다. 살아온 날을 뒤로하여 다시 파헤치는 과정을 거친다.
동생과 이층침대를 함께 쓰다 분리되어 침대만 덩그러니 있던 방에, 본격적으로 책상과 의자 책장 등의 가구가 들어온 초등학교 입학 때쯤으로 기억한다. 평범한 24평 아파트에 두 번째로 큰 공간이 자연스럽게 내 방이 되었고 책장을 채우는 것을 인테리어라고 여겼는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종종 모르는 분과 어머니가 사뭇 진지한 대화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분이 집을 나간 후엔 몇 권의 책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곧잘 재밌게 읽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책 시리즈의 모두가 책장 한켠을 빡빡하게 채웠다. 오시는 분들이 달라지고 자주 올 때마다 새로운 종류의 책이 층수와 위치를 가지고 서로 밀고 밀리면서 자리싸움을 치열하게 했다.
과학상식부터 역사, 만화부터 동화까지 장르를 망라한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어머니 나름대로 복잡하게 머리를 쓰셨으리라. 가로 4칸, 세로 6칸 방 한쪽 벽을 모두 차지한 컬렉션 중 단연 하이라이트는 ‘만화 삼국지 60권’ 시리즈였다. 가장 좋아하고 자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기억나는 책 서문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 상대하지 마라’라는 문구는 초등학생의 가슴에 장엄한 불을 지폈던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은 커녕 열 번 이상 읽었지만, 스토리 속 영웅호걸 같이 위대한 인물은 아직 되지 못했다.
좋아하던 책, 읽지 않은 책, ‘수학의 정석’ 같이 앞부분만 너덜 해지고 뒤는 깨끗한 책도 많았지만, 그때 그 컨텐츠들을 이불 안에 들어가서까지 충분히 즐겁게 즐겼다. 유년기, 부모님이 만들어 준 사설 도서관에서 그 소년은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책과 함께 잘 자라 아직도 글과 책을 끼고 살아가고 있으니, ‘당신들의 자식농사 전략 중 하나는 그래도 성공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곡식들이 잘 자라 너무나 고맙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숙인다. 수백만 원 투자 대비 효율성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인생 또 모른다’라며 부모님께 합리화하며 핑계를 대 본다.
가구 브랜드 시디즈 광고에,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라는 카피가 있다. 한 브랜드가 의자를 독점하던 때 던진 이 신선한 메시지는 소비자에게 ‘의자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시켰고 그 카피는 매우 유의미한 시장 변동을 가져왔다고 한다. 하긴 의자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는데 다른 의자를 사겠나.
스티브 잡스는 어디로 이사가든지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 한 1인용 가죽 소파만큼은 손수 들고 다녔다고 한다. ‘자빠지는 의자’ 스타일의 그 의자는 그에게 구원이었다. 한쪽 팔로 턱을 괴고 기품 있게 사색하거나, 턱을 만지작거리거나, 우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세 나오는 의자”였고, 그에게 의자는 성찰의 도구였다. 어디 의자뿐이겠냐만은 의자를 인생에 비유하고, 성찰의 도구로 여기니 환경이라는 것은 인간을 바꾸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창 클 나이 부모님이 만들어 준 책의 세상 속에서 앉았다 엎드렸다 몸을 뒤집으며 읽고, 읽어야 할 책들을 쌓으며 마치 놀이터처럼 그 공간을 향유했다. 올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며 좁디좁은 거실 공간을 머리 굴리며 구상할 때, 가장 비중 있게 마련한 공간 역시 이른바 나만의 ‘작은 서재’이다. 다른 공간도 중요하지만, 책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공간 구성에 꽤나 신경을 썼다. 그러면서 환경과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 더 깨달았다.
그 공간에서 책 읽고 글 쓰고 작은 서재에서 시간을 보내며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느낄 때마다 가끔 부모님과 함께 있는 느낌이 든다. 지척에서 그들이 나를 항상 봐주는 것 같아 더 편안할지도 모른다. ‘저를 읽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머뭇거리며 머리를 숙이고,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 라고 새해 인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