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명의 영웅을 보냅니다
때는 98년 정도, 공 차는 것을 좋아했던 소년이 처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산공설운동장을 찾았다. 처음 느낀 그 운동장의 분위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중공업에 기반을 두고, 모기업 현대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그곳은 또 하나의 용광로였다. 산업의 역군으로서 자랑스럽게 회사 작업복을 입고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든 그들은 연신 플라스틱 컵에 팩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닭발을 집어먹으며 거칠게 욕을 하며 응원했고, 골을 넣으면 모두 일어나 박수치며 우리 팀의 플레이를 즐겼다. 빽빽한 관중들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땐 아버지의 등에 올라타 경기를 보기도 했다. 만석인 경기장에 몰래 담을 타고 들어오던 말 그대로 호랑이 같은 블루칼라 응원부대가 있었다.
땀 냄새로 가득한 운동장엔 유상철, 김병지, 김현석, 정정수, 최인영 등 기라성 같은 플레이어가 즐비했고 고재욱 감독의 공격적인 축구는 항상 관중을 열광케 만들었다. 지더라도 경기 내용에 따라 박수를 치기도, 이기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온갖 물건을 필드에 던지기도 했다. 질 때 지더라도 화끈해야만 하는 울산의 팀 컬러는 아마 이때부터 자리 잡지 않았나 싶다.
앞은 짧고 뒤는 긴 상고머리가 유행하던 그 시절, 유상철은 세련된 장발 헤어스타일로 필드를 종횡무진 누비고, 단단한 피지컬로 거친 플레이를 불사하며 팀을 위해 헌신하던 선수였다. 경기가 끝날 때 그의 머리는 항상 땀에 절어있었다. 유상철은 팀 내 어린 선수축에 속했지만, 그의 플레이는 필드 위의 감독처럼 듬직했던걸로 기억한다.
일본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선배로서 박진섭, 이천수, 현영민, 정경호, 유경렬 등 후배들을 아우르며 문수구장에서 마지막 선수의 장을 마무리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가고, 중요한 경기에서 헤더와 발로 결과를 바꾸고, 팀을 이끌어가는 노련함은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하기 그지 없었다. 2005년 K-리그 울산현대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아직까지 울산현대엔 이 때의 우승 이후 16년째 리그 우승이 없다.
울산현대의 서포터즈인 처용전사의 일원으로 목이 터져라 그의 이름을 외치고, 전주 포항 등 원정구장을 동행하던 그때가 내 삶에서 K리그가 가장 재밌었던 시절이었다. 자랑스럽게 울산현대의 유니폼을 입고 원정 응원석에 자리 잡은 우리들은 홈 서포터즈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주눅들지 않았다. 처용신의 힘을 빌려,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단 한 번도 좌석에 앉지 않고 그들의 플레이에 간절한 응원을 쏟았다. 경기에서 이긴 후 하행선 휴게소에서 선수들과 만나는 날엔 그곳에서 응원가를 부르며 90분의 혈투를 벌인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쳐 주었다. 2대의 구단 버스에서 내리는 모든 선수 및 관계자에게 그것 밖에 해 줄수 없는게 서포터즈이지만, 그것만 해 줄수 있어도 행복했다. 상행선과 하행선 그들과 우리가 같은 길을 걸었다는 것으로도 벅찬 마음이 일었다.
울산 키즈인 나에게 울산현대가 최고의 구단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중심엔 언제나 선수 유상철이 있었다. 공설운동장 시절부터 문수구장에서의 은퇴까지 거기에 내가 있었고, 언제나 그가 있었다.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든든한 체격으로 파란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에서 항상 존재감을 내뿜었던 그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방송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다던 그의 말이 공허하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 가슴속 먹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에겐 2002년 월드컵 영웅보다 울산현대의 심장 같은 선수로 기억에 남은 유상철 선수&감독님. 고향 같던 울산과 요코하마를 마음껏 뛰어다니시길. 당신과 함께한 시간, 당신 덕분에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짧은 글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영상 출처 : 울산현대축구단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