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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Jan 17. 2022

사회 그리고 개인

현장의 사람들과 일

얼마 전까지 일한 아르바이트 현장에는 ‘Arbeit'라는 어원에 걸맞게 게릴라 부대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가 헤어졌다. 필요에 의해 왔다가 자신의 필요를 충당하면 떠나는 이들. 사람들을 만나 얘기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엇을 하다 왔는지’라는 질문을 실례가 안되게 물었고, 나 역시 ‘원래 하던 일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받았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 사람에 대한 앎을 가늠했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의 암묵적인 룰 같기도 했다.


어딜 가나 있는 것처럼 방학을 맞아 용돈벌이를 하는 대학생이 있었고, 미디어 사업을 하던 50대 형님이 있었다. 마침 내가 했던 일과 비슷한 분야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떠나면서 그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일을 할 수도 있겠다’며 문자로 명함 하나를 남겨주었다.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물었던 것에 그는 그렇게 자기 이야기와 명함을 남겼다. 그가 보기엔 내가 아직 쓸모 있어 보였나 보다. 빈말일지라도 그의 말 한마디에 감사했고, 몸이 달아올랐다.


중, 고등학교 엘리트 선수로 야구를 한 친구도 있었다. 야구광인 내가 이것저것 캐물으니, 달갑지 않게 대답해 준 친구. ‘연천미라클’ 독립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고, 비시즌인 지금 돈을 벌려고 왔단다. 선수 생활은 더 이상 힘들 것 같아 지도자로 나아가려 한다고. 몇 해 전 정식 선수 경험이 없는 비선수 출신으로 프로에 입단해 1군 경기에서 투구를 하고 기적의 신화를 쓴 ‘한선태’ 선수 얘기를 해줬다. 그도 알고 있었으리라. 근 10년 넘게 했던 운동에서 꽃피우지 못한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엘리트 체육에서 성공하는 선수는 백에 하나꼴로 보면 된다. 나머지 99명은 중도 하차하고 다른 길을 걸어간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길도 마다하고. 유럽 및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운동선수에게 일정 수준의 학업을 병행시킨다. 운동 못지않게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 도태되지 않기 위해, 좌절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최소한의 보장을 해준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야구가 싫다던 그가 어떻게든 야구 관련 업으로 다시 일어났으면 하고 앞길을 응원했다.


건축회사 인턴을 하다가 그만두고 나온 친구와는 짧지만 강력한 서로의 경험담을 나누었다. 우리네 대부분은 공부하고 싶어 들어간 학교에서 전공을 배우고 사회로 나간다. 뜻을 품고, 큰 꿈을 안고 회사로 입사하지만 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썩을 대로 썩은 환경에 우리는 그저 하나의 부속품이 되어가고, 항상 비던 자리는 누군가가 채워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비게 된다. 기성세대는 시스템을 탓하지 않고, 젊은 세대의 끈기를 비판한다. 자기들의 얼굴에 침 뱉지는 못하는 그야말로 ‘라떼는 말이야’ 의 결정체. 고이고 고여 진하긴 한데 원두가 너무 오래되었는지 삼키기엔 너무 써서 뱉어 낸다. 환경과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열심히 하고자 하는 자들은 질려서 떠나버린다. 너무도 썩어버렸기에. 고인물들만 남아있는 사회.


원수가 간다고 해도 말리는광고 회사는 3-5  경력의 대리가 정말 귀하고, 모셔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3-5 정도 일을 해보면 업에 대해 돌아가는 원리, 시스템 등을 몸소 채득하고, 자기들만의 데이터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이즈도 자연스레 나온다.  갈림길에서 대부분 그만두는 선택을 한다.  아닌  같으니 다시 다른 길을 찾는다. 비단 광고회사 뿐이랴.

1년 안에 퇴사하는 신입사원은 갈수록 늘어나고, '생존의 법칙' 이직은 마지막 탈출구로 당연시 여겨진다.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평가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3-5년 배운 것으로 10년을 벌어먹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대학 졸업장 하나로 정년까지 일하고, 취업 호황에 기업을 선택해서 가던 윗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싶다. 갭이 큰 만큼 서로 이해하기도 힘드리라. 그래서 ‘꼰대’라고 못 박고, ‘나약하다’ 서로 못 박는다.


현장 팀장은 여기서만 5년을 일한 베테랑이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분들은 시스템에 적응되었으니 되게 슬렁슬렁 일하고, 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팀장은 달랐다. 마흔여섯 미혼인 그는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밀어내며 필요 이상으로 악착같이 일했다. 그만두기 하루 전, ‘빚을 갚는다고 4년 고시텔에 살다가 작년에 월세 집 하나를 구했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어렵게 나왔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입김과 그의 말이 뒤섞여 한동안 쉽게 구분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었다. 이해하는 척하지도 않았고, 공감하는 척도 하면 안되리라.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까. 단 왜 그가 그렇게 악착같이 일했는지는 알게 되었다. 힘들지만 어쩔수 없이 견뎌야 하는 그의 세월은 더욱 더디게 갔으리라. 키 큰 그가 조금 더 편하게 다리 펴고 자는 모습을 떠올렸다. 형님의 안녕을 빈다.


사람은 일한다. 자기의 쓸모를 자기가 손수 증명하기 위해. 무엇인가, 어딘가에 보탬이 되기 위해. 우리는 모두 쓸모를 강요당하며 살아간다. 세상에 태어난 운명일까 싶다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든다. 태어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 모든 노동은 다 숭고하다. 이곳 현장 사람들은 다시 도전하기 위해, 다시 살아가기 위해 일한다. 한두 번 아니 세 네 번 좌절을 맛본 사람들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일한다. 그들의 발걸음이 항상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고, 설사 뒤로 물러나는 발걸음이라고 해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으면 한다.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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