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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Feb 20. 2022

1-2. 읽고 쓰는 인간이 되기까지

'핏줄의 영향'





가득 채워진 내 방의 책들을 어느 정도 독파하던 중학교 때인가. 몸의 2차 성징이 뚜렷해지는 이 시기는 생물학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의 변화도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음악에 빠져 팝송을 들으며 흥얼대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탐닉하면서 자기 취향의 어떤 것을 본격적으로 찾아가는 친구들이 등장했다. 심신의 변화가 크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그 세상에서 자신을 찾아가야 하니 예민하고 맞서 싸워보기도 하고, 반항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든다.


배우는 교과목이 달라지고 그새 머리가 컸는지 아버지 책장을 구경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책장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인호의 ‘상도', 박경리의 ‘토지' 등 기라성 같은 작가의 대하소설 시리즈와 이문열, 김훈의 단편소설, 경제경영 관련된 실용서적, 오래되어 색이 바랜 시집과 에세이 등이 즐비했다.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물어보니 청년 때부터 읽으며 모아온 책이라며, 실제로 보지 못해 믿기 어렵지만 본인 왈 젊었을 때 잡히는 대로 무엇이든 읽었던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아빠의 청년기 시절 그 나이를 통과하여 보니 그때 그는 무엇을 읽었고, 어떤 기준으로 컬렉션을 구성해 책을 남겨놓았는지 궁금했다. 그것들은 성인이 되자 자연스레 대물림되어 내 것이 되었고, 그의 청년 시절을 떠올리며 즐겁게 향유했다.


군 제대를 하고 ‘광고를 배우겠다'는 확신에 찬 일념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가족에게 소상히 말했다. 입시 공부를 다시 해 광고학과를 가고 싶고, 다니던 학교는 중퇴하겠다고 했을 때 언제나 그랬듯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공부를 해라',’학원을 다녀라'는 식의 강요 한 번 한 적이 없다.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라며 태어나자마자 내가 들었을 말들을 더 많이 해주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 보면 ‘방임’에 가까운 자녀관을 가지고 나를 존중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유년기부터 체득한 ‘자유로움’은 아직도 나의 근간을 굳건히 이루고 있으니까.


’광고를 하고 싶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자신의 청년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63년생 그녀가 청년기를 지나온 80년대 그 무렵은, TV광고에서 한참 CM송이 유행하던 때였다고.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등 도입부만 들어도 자동 재생되던 유명 CM송이 많았고, 노트에다가 CM송 대부분을 필사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광고 카피를 필사하는 격인데, 적는 것을 좋아하고 광고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들이 광고를 하겠다고 하니 여간 신기했나 보다.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나의 앞길을 응원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살가운 말은 하지 못하는, 마음은 가득하나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곧 죽어도 경상도 사람들의 애정표현 방식. 아빠 역시 서울 상경길에 ‘단디해라' 딱 4음절의 말이 끝이었다. 얼마나 압축하고 함축한 표현인지 알기에 그들의 진심을 충분히 느꼈다.


유년기, 명절 때로 기억한다. 이모가 다짜고짜 ‘우동 한 그릇'을 사주겠다고 나를 데리고 나갔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하고 바깥 구경도 하고 싶어 같이 길을 나섰다. 한참을 우동집을 찾던 나와는 달리 이모는 서점으로 들어갔고, 정말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사주었다. 먹으러 나왔다가 책 선물을 받은 나는 한참을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진짜 우동 사줄 줄 알았나?”라며 웃던 이모의 모습과 함께. 그 책은 본가로 돌아오는 차 뒷좌석에서 한 번에 다 읽어버렸다. 어찌나 감동적이고 재밌던지. 이야기를 쫓아가느라 도착한지도 몰랐다. 그때 책 선물의 참맛을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책 한 권으로 행복을 선물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찾아보니 ‘우동 한 그릇'은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며, 지금은 연극으로 공연될 정도로 그 이야기의 서정이 짙은 작품이다. 안 보았다면 가볍게 보길 추천한다.


”니는 커서 뭐가 되겠노?” 아빠, 엄마의 지인들, 학교 선생님들, 만나는 어른들마다 내게 하는 말이었다. 꼭 뭐가 되어야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은 으레 그렇게 아이의 미래 짐작을 즐겼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누구도 맞추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의사, 판검사, 변호사 등 뭐가 되어야 하는 이름 있는 직업은 가지지 못하고, 그저 ‘읽고 쓰는 인간'이 되어버렸으니까.


무언가를 읽고 쓰고 보는 것에 영향을 주는 이들은 언제나 내 지근거리에 있었다. 몸소 겪은, 보고 자란 것들 중에 좋은 것들을 골라서 잘 흡수한 아이는 이렇게 자라서 그때의 이야기, 그때의 감정을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밀어쓰며 살아간다. 그들은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허나 주는 사람은 몰라도 받은 사람은 평생 기억한다. 그게 말이던, 마음이던, 선물이던, 표현이던. 그 시간이 과거던 현재던.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능이 탁월하다는 것을 손수 증명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내 삶의 뚜렷한 목표 하나를 가슴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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