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 입맛 궁합
매운 음식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입맛 궁합이라는 게 있다. 음식끼리의 궁합이 아닌 입맛이 비슷한 경우인데, 입맛이 비슷한 사람과 약속을 잡으면 메뉴 선정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아서 매운 음식이 엄청 당길 때, 일명 맵찔이를 만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매운 음식은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오늘이 그랬다. 결론 없는 릴레이 회의를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져서 매운 음식이 미친 듯이 당겼다.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오늘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내 저녁 식사 메이트는 둘 다 소문난 맵찔이들이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운맛은 1도 없는 메뉴를 선정했다.
친구랑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 여행을 갔는데 친구가 로컬푸드를 너무 싫어해서 유명하다는 음식을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 그게 너무 아쉽고 속상했지만 티 낼 수 없었다고 했다. 상대방의 입장에선 여행까지 가서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겠지만, 내 친구 입장에서는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맛보지 못한 게 아쉬웠으리라. 결국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둘만의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 음식들이 국내에 들어와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친구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그때의 한을 풀었다.
누구에게나 입맛 궁합은 중요하다. 연애를 할 때도 입맛이 너무 극과 극이면 데이트를 할 때마다 메뉴 선정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는 입맛이 크게 유별나지 않아 못 먹는 음식도 거의 없고, 웬만한 음식은 시도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딱히 미식가도 아니라서 식당에 갔을 때 맛이 있다, 없다를 크게 논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친구들은 내가 맛있다거나, 맛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건 진짜라고 꼭 기억해두려 한다.
그런 내게도 시련이 닥친 적이 있다. 2년 전 만났던 사람이 식당을 가면 무조건 반주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 그는 주로 소주를 마셨는데, 나도 술을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릴 때처럼 즐기지 않던 때라 한두 번도 아니고 데이트를 할 때마다 술을 마시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운 감정을 무마시키는 용도로 술이 참 좋은 역할을 했지만 한 달, 두 달이 넘어가자 살이 찌고 삶은 피폐해져 갔다. 일주일에 몇 번을 취해 잠들었던지. 그와 헤어진 후 남자를 사귈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포인트는 술을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그 여부였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입맛 궁합은 꽤나 중요하다. (이 얘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으나) 오늘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글로 달래 보았다. 내일도 생각나면 혼자라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