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영상은 바로 거침없이 하이킥 영상이다. 괜히 울적해질 때에도, 생각 없이 울적해질 때에도, 혼자 밥을 먹는 게 싫을 때도 나는 무심코 거침없이 하이킥 영상을 틀곤 한다. 이런 나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읽었는지, 어느 날 유튜브 추천 영상에 너무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이질적인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거침없이 하이킥 세트장에 모여있는 배우들의 영상이었다. <다큐플렉스- 거침없이 하이킥> 편이었다. 홀린 듯 썸네일을 눌러 댓글을 찬찬히 보니, 나처럼 아직도 거침없이 하이킥 사랑이 끝날 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끝난 지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 콘텐츠의 홍수 속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점에서도 왜 우리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열광하는가.
지금도 어디선가 잘 살아가고 하이킥 가족들
거침없이 하이킥 영상의 댓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댓글은 “이 가족들은 아직도 어디서 잘살고 있을 것 같음”이었다. 이 댓글을 엄청난 공감을 받으며 상위 댓글에 랭크되어 있었는데, 이 점이 바로 하이킥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잘 대변하지 않나 생각된다. 분명 너무나도 독특하고,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가족인 듯하지만, 묘하게 정감 드는 캐릭터들과 웃음 속 하나둘 지닌 사연에 시청자들은 매료된다. 마치 옆집에 사는 웃긴 가족과 같이, 티비 너머의 이 가족들에게 시청자들은 ‘정’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특히나 핵가족 형태가 주로 나타나고,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오늘날, 하이킥 가족들 특유의 정감 넘치면서도 유머러스한 가족 분위기는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를 제공한다. 혼자 밥을 먹기 싫은 날에는 무심코 거침없이 하이킥을 찾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너무 웃긴대, 웃기지만은 않은
거침없이 하이킥이 그냥 마냥 웃기기만 한 시트콤이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김병욱 PD의 신념과 같이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각 인물의 조금은 짠한 찐 인생이야기가 담겨있다. 매일 빈둥거리며 사고만 치고 밥만 많이 먹는 큰아들 준하가 사업 실패 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짓 출근을 하는 장면이나, 언제나 유쾌한 나문희 할머니가 가족의 핀잔 등에 속상해할 때에는 왠지 모를 짠함이 들기도 한다. 특히, 백치미 가득한 허당 유미가 간첩이었으며 아버지의 사고를 둘러싸고 힘들어하는 장면에서는, 그동안의 미스터리들이 풀리며 서사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웃기기만 한, 유머만 가득한 시트콤이었다면 이 정도의 작품성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거침없이 하이킥이 명작으로 꼽히는 데에는 여기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시대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
사실 거침없이 하이킥이 방영되었을 당시 나는 굉장히 10살도 채 되지 않았던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매일 저녁 퇴근하신 부모님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하이킥 본방 사수를 했던 기억 하나는 뚜렷하게 남아있다. 매일매일 저녁 시간마다 방영되었던 특징 때문인지, 거침없이 하이킥을 15년 전 개인의 경험과 맞물려 기억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이제는 방영되지도 않는 형식이라는 시트콤이라는 특징은 추억과 향수를 더 할 것이다. 매일 저녁 본방 사수라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자극적인 재미에 너무 많이 노출된 탓에 오늘날 TV 시트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남아 시대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