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첫번째 이야기
1. 나의 이야기
나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미술을 시작했다. 내가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난 건 정말 아닌데, 미술학원 선생님의 칭찬 요법으로 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꿈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서예에 조예가 깊으셔서 나는 방과후에도 선생님께 서예를 배웠었다. 그 때 좋아진 먹향기로 나는 후에 전공을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 엄청난 방황 기를 거친 후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돌아보면 중학교 시절 나는 그 어떤 것에도 특별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미술 숙제도 당시에 언니가 늘 도와주었기에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다가 미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명문예고에서 열리는 사생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때 앞이 캄캄했다. 정말 내 실력이 탄로 날 테니까. 도화지에 그림을 시작하는데 물감이 마구 번지기 시작했고 결국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풍경화로 완성되었다. 나는 제목을 '추상의 풍경'이라고 쓰고 그림을 제출했는데. 그 그림으로 상을 받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리고 그 시절, 국어시간에 한 명씩 책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책을 읽었는데 국어 선생님 추천으로 방송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이후 점심시간에 음악을 들려주는 디제이도 해보고 방송 제라는 큰 축제에도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겼다고 본다. 엉망인 그림에 거창한 제목을 붙이는 일. 그리고 책을 내용에 맞게 잘 읽는 일.
어린 시절, 나는 뛰어노는 것보다 이야기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좋았고, 그림이 없는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연상하는 게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미술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지만, 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해야 했던 실기과정이 내겐 마치 벌과 같았다. 게다가 방과 후 매일 4시간씩 학원에서 똑같은 그림을 그려야 했다. 내겐 공부가 오히려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적어도 공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이 될 수 있었으니까. 물론 모든 목적은 '대학 가기'였다. 나는 왜 석고상을 매번 똑같이 그려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수 없었고, 그걸 잘 그릴수록 대학 진학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졌다. 물론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깎아낸 4B연필과 내가 소비한 잠자리 지우개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니다. 지금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사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봐도 그렇다.
어찌어찌하여 힘들게 대학에 입학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중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적극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대놓고 자유로운 인간도 아닌. 그런데 대학에 오니 몇몇의 교수님들이 억제되어있는 욕망을 분출해야 한다고 했다. 주제를 던져주고 아무거나 해보라고 한다. 그때 정말 '아무거나'되는 대로 그려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오히려 내 전공인 동양화 시간에 어떤 룰 안에서 그려야 하면 , 하다못해 주제 선정에 까지 태클을 걸면 나는 다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곤 했다.
그래서 주눅이 들었고 내가 미술대학에 온 게 잘 한 일인지 반문했다.
그러나 당시에 산으로 자주 스케치를 가고, 또 우리의 옛 조상들이 중국의 그림만 답습하다가 어느 순간 한국의 산을 제대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걸음'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그림 그리기를 잘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산에서 스케치를 하고, 실기실에 돌아와 그것을 큰 화면에 옮길 때 기억이 공간이 된다는 생각.
나무를 제대로 그리려면 나무 앞에 앉아 쳐다보고 가지가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는지 보고 또 보고 하지만, 그리다 보면 가지가 내 마음대로 뻗어나가 '나의 나무'가 되어 있었다.
나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풍경. 나의 나무. 나의 길.
풍경을 그렸는데 내가 그림 속에 고스란히 있었다.
그건 예술가로 살아내기의 첫 번째 단계였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으로 인해 미친 듯이 이 일이 좋아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