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데뷔
1. 내보이기
아직도 12년 전(벌써?!) 첫 개인전 때의 설렘이 느껴진다면 약간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기억이 난다.
기대와 부끄러움이 반반. 누군가 그랬다. 개인전은 마치 내가 벌거벗고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남 앞에 서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겐 다른 얘기겠지만, 나에겐 늘 긴장되는 순간이었고, 내 작업의 부족한 부분만 더 강조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첫 개인전이 가장 만족스럽기도 하다. 나는 앞서 언급한 도화원에 대한 논문을 끝내고 바로 열린 전시였기 때문에 전시의 주제도 확실히 드러났었다. 그 전시를 위해 여러 곳으로 스케치를 많이 다녀서 그런지 내가 그려낸 공간은 모두 여러 개의 기억 혹은 시간으로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후의 전시들은 최근 유럽에서 한 전시들 말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전시들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첫 전시만큼의 만족도는 없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가장 어설픈 전시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긴장하고, 집중하고, 즐겼던 순간이었기에 나의 기억 앨범엔 최고의 전시로 저장되어 있다.
예술가로 살아내려면 이러한 '첫 시도'가 중요하다. 사실 이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오픈콜은 '문을 두드려라'라는 말과 같다. 첫 개인전이 내게 중요한 의미였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다음 전시를 만들어나가는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도 이력서는 중요하다.
외국에서도 갤러리나 예술단체에 지원할 때 이력서를 첨부해야 하는데 '경력'이 필요하다. 특히 개인전시의 경력은 '나'를 더욱 프로페셔널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개인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신경 써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초대에서부터 장소 섭외 및 브로셔 만들기 등등. 갤러리 측과 소통하면서 진행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오프닝을 하고, 이럼에도 계속 작업해야 하나 생각이 들 때쯤 전시가 끝난다. 딱 그때쯤 전보다 내가 조금 성장했고 이 전시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웠으니, 반성하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거미와 거미줄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네덜란드에서 입주한 아티스트 레지던스에서 내가 사는 집 문에 거미가 매번 집을 만들어서 아침마다 치웠던 적이 있다. 본능적으로 집을 만드는 거미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작업을 내보이는 일은 내가 서 있는 위치를 환기시킨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내가 좀 더 세상을 향해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세상이 내게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2. 살아내기
예술가로 살아내기의 일곱 번째 단계는 혼자 동굴 속에 있는 걸 즐기더라도 내 작업을 내보이는 '도전'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학교에서의 배움이나 졸업 전시가 팀워크였고 그룹 활동이었다면, 개인전은 말 그대로 홀로 서기, 솔로로 예술세계에 데뷔하는 것이다. 그룹 활동을 하던 가수가 솔로로 음반을 내면 그만의 음색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처럼, 개인전은 나의 개성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나의 작업들을 한 공간 안에 모아놓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작가는 성장한다.
나는 언제나 개인전을 목표로 작업을 한다. 테마를 정하고 이야기를 상상하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처럼 내가 그려나갈 것들을 먼저 상상해본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아이디어 스케치를 시작한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나의 상상이 캔버스에서 제대로 구체화되지 않을 때이다. 10개의 작업 중에 9개가 그렇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내 솔로 데뷔의 날은 다가오고 나는 어쨌거나 홀로 무대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