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by Artist K
IMG_9798.JPG 그 곳에 머물기를_Kelly Jang 2016

70세가 넘은 한 작가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분주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겨울이 오기 전 부는 가을바람처럼 까마득하게 사라져 가는 것 같다고. 그래서 이번 가을이 유독 쓸쓸한 기분이라고.

내 마음도 함께 쓸쓸해졌다. 그냥 그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서.


예술이 왜 아름다운가? 예술은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삶은 흉한가? 삶은 목적과 목표와 의지가 넘치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길은 우리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끈다. 아무도 출발하지 않고 아무도 도달하지 않는 그런 지점을 이어주는 길이 있다면!

폐허의 아름다움? 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유용하게 되지 않기.

과거의 신비? 우리가 과거를-기억함 자체,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존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는 과거, 부조리, 사랑하는 이여, 모두 부조리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것을 말하는 나, 나는 그러면 왜 이것을 쓰고 있단 말인가? 내 글의 불완전함을 알기 위해서다. 꿈을 꿀 때는 전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글로 써놓으면 불완전함이 겉으로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글을 쓴다.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 배수아 옮김.


어쩌면 그분의 말처럼, 슬프지만, 내가 살아온 과거가 까마득이 사라져 가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목적이 너무 명확히 보이는 예술이 싫다.

아무도 출발하지 않고 아무도 도달하지 않는 그런 지점을 예술에서 담아낼 수 있다면!


예술가로 살아내기 여덟 번째 단계는 시간을 담아두는 것이 예술의 한 단면이더라도 그 역시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작업에서 삶에 대한 욕심이 드러날 때, 더더욱 진실을 말할 수 있기를!

페소아의 글은 종종 나를 뜨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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