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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농부

by Artist K

루마니아로 휴가를 잘 다녀왔다. 처음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에 갔을 땐 '가난하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고, 두 번째로는 '내가 참 가난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난 그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잘'살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집이 도시 외곽이라 슈퍼에만 가려고 해도 차를 얻어 타야만 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릴 때 차비를 내는데 마을 사람들이 2유로 이상은 절대 받지 않았다. 너무 고마워서 더 쥐어주려고 해도 그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누구도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았다.


친구가 사는 동네는 논밭이 많고 집에서 다들 말이나 양, 돼지, 닭 등을 키운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먹이기 위해 농사를 짓고, 크리스마스나 새해 같은 특별한 날엔 그렇게 정성 들여 키운 돼지나 닭을 가족과 먹는다.

그곳에도 은행이 있고 죄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광고를 하고 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돈을 빌려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갖고 있는 것 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내지 않는다.

내가 욕심내면 낼수록 나는 가난하다. 요일별로 입을 옷과 화장품이 든 내 짐가방을 보았다. 언제나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여행 갈 때도 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녔다. 살면서 내가 가진 몫의 이상을 늘 욕망했던 것 같다. 언제나 나의 삶에 무언가 빠진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가난했다. 나는 사실 가난하지 않은데 내 욕심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번 휴가는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리고 지금의 초라한 내가 그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본 적은 없는지.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삶이 얼마나 고귀하게 보이는지.


루마니아에서 처음 말을 타보았고 말이 얼마나 따뜻한 체온을 가졌는지 느꼈다. 내가 균형을 잘 잡아야 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쉬운 사실에서 인생의 어떤 면을 아주 조금 볼 수있었다. 발이 땅에 떨어지면 공포를 느끼는 나라서 벌벌 떨며 말을 타긴 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말 타는 사람들을 볼 때 그렇게 쉬워 보였는데 막상 내가 올라타니 균형을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말의 걸음을 온전히 내 몸으로 느껴야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버스를 30시간 넘게 타고 네덜란드에서 루마니아로 갔고 다시 돌아왔다. 아직도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아 감기 기운이 있다. 그래도 코 앞에 닥친 전시 준비를 위해 매일 작업실에 간다. 아마 휴가에서 얻은 따뜻한 기운 때문에 나는 잘 버틸 것이다.

그곳에서 가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너무 와 닿아 써두었다.


“들어봐. 시인과 농부는 아주 많이 닮아 있어.

시인과 농부는 땀으로 살지. 부지런한 땀으로 흥건히 적셔진 흙에서만이 곡식이 맺히고, 시가 맺힌단다. 새들과 물과 햇빛이 그들의 친구야.

시인과 농부는 말이 없지. 아침의 바람과 흙이 들려주는 이야기, 공기가 청명하게 부서지는 소리로 충분하니까.

그들은 폭풍을 견뎌. 시인도 농부도 아주 연약해 보이지만 그들은 자연을 알기에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 그 폭풍이 남긴 것들로부터 그들은 배우는 거야. 삶을 배우고, 자연을 배우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시인과 농부는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아.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내고, 그 기쁨을 온전히 감사함으로 표현할 줄 알아.

그들은 기다림을 좋아하지. 자연이 말할 때까지, 영혼이 말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거야. 그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서두르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던한 건 아냐. 시인과 농부는 얼마나 예민한 눈을 가졌는지 몰라. 조그만 변화에도 그들이 키워내는 것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차리거든. 그건 오랫동안 그들이 기르는 것을 한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보았기 때문이야. 그런 덕분에 시인과 농부는 언제나 성실하단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같은 시간이면 같은 자리에 서서 기다리고, 바라보고, 맺히는 열매마다 감탄하고, 그렇게 겨울이 되어 다시 빈 들이 되어도 감사할 수 있는 거야. 맞아. 아주 오래된 방식이지. 그래서 그들은 늘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보일 테지. 아주 오래된 과거를 제자리에서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들이야말로 긴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이야”

어떤 날 6-여행, 음악 / 위서현, 다락방의 연인 중.


나는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 돌아온 기분이다. 그러나 무엇이 나의 길고 긴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나는 그들로부터 배우고 돌아왔다.

2016년 1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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