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그의 글은 두려울만큼 쓸쓸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두 권이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유성용의 여행생활자.
아, 2권이 더 있구나.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김민호 정유선의 짧은 외로움의 기록, 막시밀리앙 르 루아 의 프리드리히 니체.
이 중에서 니체의 책이 가장 두껍고, 그만큼 메인으로 읽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가다보니, 이 책을 읽는 내가 위험에 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한 의지를 외쳤고, 도덕과 선을 부정했던 그의 주장을 반복해서 보다보니, 아직 그만큼 강하지 못하고 유약하게 선의지에 기대고 있는 내 정서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뽑아 든 것이 유성용의 여행생활자.
이웃처럼 지내는 여행 독립출판물 서점에 마실 나갔다가 산 책이지만, 그동안 내내 읽어보고 싶긴 했었다.
여행작가 유성용.
오래 된 여행기의 개정판인 만큼 사진이나, 여행지들이 흔히 말하는 '핫'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체 역시 쉽게 읽히지 않는 만연체에 수사나 감정선이 잔뜩 들어 있었다. 실망하려는 1/5 지점이 지날 때...... 난 서서히 그의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의 글들이 나의 숨죽여 있던 옛 기억을 들춰내 주었다. 삶에 적응하지 못해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내 과거들. 내가 그랬듯이 그도 그런가보다.
여행자들은 생활에 지처 여행을 떠나지만, 그것이 며칠짜리 레저가 아니라면, 결국 여행이란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이다.
p.101
마음을 후벼파고 들어왔다. 여행이란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
내가 하는 여행이 그렇다. 어떤이의 희망, 도전, 레저와 다르게 나에게 여행은 엄마 속 자궁으로 들어가는 회귀이자, 삶에 대한 도피였다. 그래서 난 떠남으로써 내 자리를 찾은 듯 편안해진다.
반면, 도중에 이런 글귀도 나온다.
그대가 태어날 대 그대는 울었고 주변 사람은 웃었네.
그대의 울음소리에 나도 놀라 깨어났다오.
세상소리에 두 번 다시 속지 말았으면 하고.
감사하오. 그리고 축하하오.
p.65
작가의 생일날 알고 지내는 스님이 보냈다는 메시지란다. 이 글귀를 읽었을 때, 난 소름이 돋았다.
언어란 이래야 하는 것이구나. 이런 메시지를 담을 수 있어야 언어인 것이구나. 새삼 나의 지껄임이 부끄러웠다.
오늘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한 절반 읽은 것 같다.
주로 인도, 티벳 등을 다닌 것 같은데, 그 뒤로는 또 다른 나라들이 있는 것 같다. 약간 시대감이 떨어지는 문장, - 몇년전에는 유행했을 것 같은 - 문체들이 분명 보인다. 헌데 이것이 작가가 유행을 탄 것이 아니라, 작가만의 개성이라는 것이 분명히 느껴진다. 단지 그의 개성이 좀 잊혀졌을뿐.
하지만, 그의 감성은 흐려지지 않았고, 글에 써내려간 그의 고백전 문장들은 여전히 트렌디하다.
글은 작가의 삶을 반영한다. 그래서 작가는 거짓으로 살 수 없고, 매일 먹는 밥과 말과 잠이 모여 글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삶을 담보로 절절히 쓴 그의 문장들이 잠자고 있는 나의 욕망을 깨워줬다.
여행에 대한 길을 잃은 요즘. 발을 땅에 딪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나를 설명하지 못했던 요즘이었다. 항상 현실을 부정하며 도피성 여행을 떠나야 숨을 쉴 수 있었던 나 였던 것을 어느 덧 잊어버린 것이다.
잊어버린 나의 원초적 기질을 꺼내어 준 그의 글에 감사를 표한다.
ps. 니체의 독서평을 먼저 올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의 사상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과격해지고 있었다. 안그래도 위태한 나에게 이런 따뜻하고 쓸쓸한 여행기가 좀 더 나을 것 같아 당분간은 읽지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