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빅데이터, 스몰데이터

각자의 영역은 있다

by Kelly Kenye Kwon

작년 12월부터 3월까지 빅데이터 스타트업에 다녔었다. 세상이 하도 빅데이터 빅데이터 메아리를 외쳐서 이기도 하고, (내 지식으로는 엄연히 빅데이터와 리서치 업계는 다른데) 헤드헌터나 기업들이 빅데이터 포지션에 리서치 경력을 요구하기도 해서였다. 몇 년 전 테크 트렌드 조사를 했을 때, 난 이미 빅데이터가 세상을 점령할 거라고 들었고, 그 중심에는 머신러닝과 알고리즘이 있다고 했다. 그 조사를 한 뒤 몇 년 뒤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어쨌든 그 스터디 결과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논하는 빅데이터 세계에서 나의 리서치 데이터는 하등의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번아웃 치료 후 다시 구직을 하려니 잡포털이나 헤드헌터가 빅데이터 분석가 포지션을 들이댔다. 내가 한 리서치데이터와 '빅데이터'의 그 데이터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항변했건만, 아니라고, 기업 담당자들도 리서치 경험자를 찾고 있다며 자꾸 갖다 대었다.

면접을 거부하기도 하고, 면접 후 잘 안되기도 했지만 기업 담당자들이 나를 아예 조건도 되지 않는 지원자로 보지 않았었다. 그러자 뭔가 내가 알고 있는 빅데이터가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빅데이터와 리서치데이터를 병합하는 서비스를 모토로 삼는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전부터 들었던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아, 애초에 내가 수습의 자격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보낸 3개월. 난 그 동안의 내 생각이 맞았고, 지금 기업 내 빅데이터 부서 대부분은 정확한 업무와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나는 스몰데이터를 찾는 리서처로 자립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 몇 개월간의 Trial & Error로 터득한 것은 빅데이터와 스몰데이터는 그것이 해결할 수 있는 이슈는 그 분야가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마케팅 리서치는 기업의 비즈니스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된다. 그곳은 매우 분명해야하고, 디테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A라는 시장에 진출할 것인가, B라는 제품을 런칭할 것이가, C라는 타겟층에 다가갈 것인가.... 같은 판단의 이슈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그 양이 방대하고, general하기 때문에 그렇게 특화된 이슈에 딱 맞는 답을 제안하지 못한다. 다만 A 시장 전반의 흐름, B제품에 해당하는 제품 카테고리의 소비 패턴, C라는 집단의 전반적 라이프 패턴.... 등은 빅데이터로 읽을 수 있다. 그 흐름을 토대로 Go/Stop을 기업내부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스몰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던 경영진/담당자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에이전트가 제대로 일을 안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아니, 그 많은 돈을 들여서 데이터 분석을 했는데, 그 정도 밖에 못알아내요?"

"그래서,,,, 런칭을 해야 한다는 건가요, 하지 말라는 건가요?"


사실 빅데이터 프로젝트 비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소비자 조사와 유사한 금액의 프로젝트를 했는데, 고작 알아낸 게 시장 상황이라니... 이해가 간다.

즉, 빅데이터는 비즈니스 이슈 해결,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자료로 활용해야 할 때 그 효용성은 떨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고 가정인데, 빅데이터는 새로운 서비스나 시스템을 개발할 때 하나의 부품처럼 활용되어야 한다. (즉, 데이터가 스트리밍으로 계속 공급되고, 그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가 지속 제공될 수 있는 방식)

예를 들면, 구글의 redirecting 마케팅 (짜증나지만, 피할 방법도 없고, 가끔은 편리하기도 하다), SK T-map 서비스, Netflix의 추천 영화 등... 이런 것들은 지속적으로 데이터가 공급되면서 서비스가 업데이트되어 제공되는 것들이다. 빅데이터는 큰 데이터이기도 하지만, 흐르는 데이터이다. 나의 모바일결제 내역, 스마트폰 앱 사용 등은 계속 쌓이는 것이고, 그래서 커져버린 데이터이다. 이런 데이터를 어떤 한 시점에 뚝 잘라서 몇 달이고 분석한다는 건 빅데이터의 태생적 가치를 무시하는 시도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 스타트업의 사업모델이 이런 식이었다. 뭐, 이건 나의 견해이므로 그 회사가 대박이 난다면 할 말은 없다.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마틴 린드스트롬의 '스몰데이터' 이다. 2년 전에 나온 책이고, 이미 읽기 시작한지 2달이 지났다. 특별히 재미는 없지만,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스몰데이터에 집착해서 비즈니스 이슈를 풀어내는 과정이 당시 혼돈스러웠던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의 경험을 보면, 출장을 한 2주씩 가서 사람들의 행태, 가정 방문(조사 방법에서 'Ethnography'라고 한다), 길거리 관찰 등을 하면서 '인도에 런칭할 시리얼 박스 컬러 결정', '브라질 맥주 브랜드 전략' 등을 풀어나갔다. 기업의 사업진행과 밀접한 이슈이고, 이미 있는 제품/서비스를 어떻게 더 잘할까 하는 이슈이다. 그는 길거리 사람과 대상자들이 흘리는 말과 행동, 소지품들을 데이터 삼아 자신의 직관과 경험으로 엮고, 연결한다. 매우 위험하고 비과학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차피 비즈니스 이슈를 수학같은 정답으로 풀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루팡처럼 일하는 그의 방식이 너무 과도하다 느껴지긴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스타트업을 떠나오면 깨달은 점을 복기할 수 있었다. 역시 빅데이터와 스몰데이터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비즈니스 이슈에 따라, 분석 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범위에 따라,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원에 따라 취해야 할 데이터는 달라져야 한다.


여전히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은 남아 있다

모든 삶이 모바일에 근간을 두면서, 빅데이터를 형성하는 건 더욱 쉬워졌다. 하지만, 우리가 삶의 모든 것을 모바일에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도 하고, 친구를 만나 토론도 한다. 혼자 방구석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길거리를 거닐며 밀려오는 사색도 즐긴다. 이런 영역은 모바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 이렇게 사람은 다채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스몰데이터로 인간을 알아가려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빅데이터가 옳으냐, 스몰데이터가 옳은가 라는 논의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각자의 영역이 있고, 그 영역에 맞게 데이터를 활용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짧았지만 스타트업에 다니며 국내 유수의 대기업의 (최근 신설된 것으로 보이는) 빅데이터 팀과 미팅을 꽤 많이 가졌었다. 그들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과 '소셜 데이터와 빅데이터는 같은 거 아니에요?' 라고 묻는 명랑한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아직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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