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에서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아 왔었다.
출근하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매일 전투적으로 일해야 했으므로.
그런데 요즘 1주일에 한번씩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보곤 한다.
사무실에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한 소비제품을 만드는 제조 기업에 입사한 나는 지난 3개월 간 할 일이 없어 몸을 배배 꼬고 있다. 조금씩 일을 찾아보고, 내가 역량을 발휘할 포인트를 잡아내려고 했지만, 들춰보면 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솔직히 해야 할 건 많고, 내가 수정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되려 윗선에서 모두 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었다. 더 맥 빠지는 건 윗분들이 딱히 내가 뭘 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적극성을 발휘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면서 난 점점 무기력해져갔고, 숨 막힐 것 같은 갑갑증을 느꼈고, 바보가 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불안한 마음에 그 사이 이력서도 넣고, 면접도 보러 다녔지만 잦은 이직과 입사한 지 너무 짧은 탓에 잘 성사되지 않았다.
고요하고 착실히 다니는 것 같았지만, 요동 치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자리를 지킨 지 4개월째.
습한 공기가 기지개를 켜는 여름 날. 나는 사무실 밖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 버렸다.
그냥 야생에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할 일 없는 하루를 보내자니, 몸에 좀이 쑤신다.
결국 브런치를 켜기 시작했다. 오전 4시간 동안은 집중 근무 시간인데, 이 시간에 나는 오롯이 내 세계에 집중한다. 무려 4 시간 동안. 이러기 위해 왜 나는 기를 쓰고 아침에 일어날까, 10분 늦게 나오면 15000원이 나오는 택시를 타야 하고, 잰걸음으로 헥헥 거리며 걸어서 오는.... 그런 수고를 들이는 것일까?
그렇게 와서 출근 도장을 찍고, 컴퓨터를 키면서 나의 출근을 온 사방에 알리고......
그런 뒤 조용히 난 내 세계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불편했었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내가 한가롭게 굴어도 되나.
하지만, 정말 할 일이 없다.
메일을 뒤져봐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가 이렇게 굴러가도 되나 싶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주문량은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이 세계에서 나는 별로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아니...... 이 곳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종류의 일을 해 주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이 참......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그런 일들......
그래서 조금씩 일이 생기고 있지만, 내가 찾아서 하고 싶지 않은, 더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이래도 될까 싶지만, 사실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