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동료라는 것.

- 8번째 퇴사이어도, 함께 일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여전히 힘들다

by Kelly Kenye Kwon

이미 짐작을 했겠지만, 나는 이직을 정말 많이 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12년 정도가 되어가지만, 도중에 어학 연수 7개월과 책을 쓰겠다고 방황했던 1년, 그리고 몸과 마음의 번아웃으로 완전한 무직 상태로 보낸 최근 1년까지 제외하면 실제 조직에 몸담은 시간은 9년 5개월 정도가 된다. 그래서 내 측근들도 실제 경력년수를 알고 나면 나이와 직급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임을 알고 은근히 실망한 기색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내가 이 말까지 덧붙이면 하나같이 놀라움과 은근한 비난을 섞은 눈초리를 보내온다.


" 9년 5개월이란 기간동안 퇴사는 8번 했습니다......"


매년 한번씩 옮긴 것은 아니었다. 입사 후 1달이 안되서 나온 곳도 있고, 6개월 혹은 3개월 만에 나온 곳들이 몇 군데 섞여 있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리서치 경력만 따져도 6번이다. 나의 이러한 잦은 이직은 헤드헌터들의 제안을 주저하게 만들었고, 설사 의욕적으로 지원을 추진했어도 입사 담당자들의 단골 거절이유가 되었다.


애초에 한 직장에 오래 다니거나, 가정을 꾸리는 등의 '정착'과 관련된 삶의 궤도에 회의적인 나는 '근속년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맞지 않는 보직과 납득하기 어려운데, 바뀔 가능성까지 전혀 보이지 않는 조직문화를 참아가며 꾸역꾸역 다니는 것 만큼 미련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것은 일종의 삶을 방관하는 것이고, 허무와 무기력증을 조장하는 거라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조금 방향을 튼 얘기이기는 하지만, 워라밸('Work & Balance')에서 퇴근 후의 삶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게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도 맥락이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8시간을 '일(Work)'에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런만큼 일이 가지는 영향력, 파장은 강력하고, 내 자존감 또한 일을 통해 형성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퇴근 후 하는 취미생활이 주는 자존감, 성취감에는 한계가 있다.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과 천성적인 참을성 부족이 결합되어, 나는 조직에 남기 힘든 이유가 생길 때마다 퇴사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헌데 그렇게 많은 퇴사를 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이다. 퇴사를 한 이유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사와의 불화 같은 것은 없었다. 때문에 후배와 상사들과의 관계는 늘 원만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퇴사로 인해 동료들과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고, 퇴근 후 맥주 한잔으로 피로를 푸는 데 동참할 수 없다는 게 퍽이나 아쉬웠다. 특히 리서치 에이전시의 일들은 협업으로 진행되는 게 많고, 마감기한이 있기 때문에 나름의 동거동락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업무에 대한 고민이나 프로세스를 공유하다보면 시간이 짧던 길던 아쉬움이 들게 된다.


이번에 이직을 하면서 퇴사를 한 회사는 작은 빅데이터 회사였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됐는데, 입사 제의를 받고도 확신이 들지 않아 내가 먼저 수습이라는 조건을 달고 들어간 회사였다. 다니는 동안 '한국에서 왜 스타트업이 정착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고, 더 이상 잔류할 의미를 찾지 못해 정규직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3개월 남짓이었고, 업무에 대한 큰 열정을 느끼지도 못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정규직 계약을 하지 않은 건 고리타분한데다 관료적이기까지한 임원진들 때문이었기에, 상사에 대한 미안함은 더더욱 없었다. 다만 눈에 밟히는 건 함께 일했던 내 부하직원들이었다. 수습이었고, 경력연차도 부족해 파트장의 직급이었지만, 팀장이 부재했던터라 3~4년차 대리들의 업무를 관리/지휘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을 손발 맞춰오면서 후배들은 그동안 제대로 된 매니저의 케어를 받지 못한 갈급증을 해소라도 하듯 내 가이드를 잘 따라줬고, 의견을 내야할 때는 주저없이 아이디어를 냈다. 근무시간에 집중하고 아웃풋의 수준을 개선하고자 야근을 자처하는 건 기본이었다. 그동안 경험한 후배들 중 업무능력과 근무태도가 이렇게 조화로운 건 처음이었다. 나도 이런 후배들과 더 이상 일을 못할 게 아쉬웠지만, 이 친구들 역시 나의 퇴사 후 다시 도래할 비체계적인 상황들에 불안해 했었다.


직장은 동료를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한다_@개인사진첩 (런던출장 중)


워낙 작은 스타트업이고, 회사 비젼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같은 불안함이 있었다. 그것은 경력이 짧은 후배들의 눈에도 명확히 보였고, 나의 부재는 이들에게 불안감을 더 키우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것을 알았기에 나는 소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좀 오바해서 말하면 큰 언니가 콩가루 집안에 어린 동생들을 두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회사나 가족이라는 공동체로부터는 자유롭고 싶지만, 개개인과의 관계에서는 지리할만큼 질척거리는 게 나였다. 그 습성이 또 발동이 되어, 3개월 알게 된 후배들이 걱정이 돼 퇴사를 하고 며칠 간은 좀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자꾸 있었던 곳,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떠나려 하는가'

지금도 전화번호부에는 옛 직장의 동료들의 연락처가 가득하다.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람도 꽤 된다. 어느덧 내 인간관계는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들과 오랫 동안 일은 하지 않았다. 계속 있는 곳을 떠나려 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계속 남아 있고 싶어 했다.


어찌됐건 9년 간 여덟 번을 퇴사한 나에게 잠깐씩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만 남았다. 그들과 함께한 추억, 일에 대한 고민, 업무 환경에 대한 개탄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리서치 에이전시가 아닌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둥지이다. 막상 동료들이 일하는 분야와 다른 곳으로 가려니 고향집을 떠나는 느낌, 내가 놀던 우주를 벗어나는 느낌마저 들어 쉽게 결정이 서지 않았다. 누가 봐도 추천할 만한 “야근이 적고, 안정적이고, 스트레스가 적은” 곳으로 가는 것인데도, 옛 동료들이 일하는 '에이전시’와는 다른 생리로 운영되는 곳이니 공감하는 것도, 공통주제도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외로움과 두려움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과도한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도 그 느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 동료라는 건 나에게 끈질기다. 회사는 달라도, 같은 업계에 있다는 것. 그 업계의 고충을 함께 한다는 공감대가 내 30대 인간관계의 원천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결정은 끝났다. 나는 다음주면 새로운 업계에서 일을 할 것이고, 내 지식보다 조직의 결정을 우선하는 ‘회사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동료를 만나게 되겠지. 10년 간 연락을 지속해 온 동료들과는 조금은 소원해 질 것이다. 그래도 그들과 간간히 만나는 시간을 만들 것을 다짐하며, 새로운 동료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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